타인을 오해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을 오해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오해하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거듭 고민한 끝에 다시 오해한다.
-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이해 불가능성을 이토록 날카롭게 꿰뚫는 텍스트가 또 있을까.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도 우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필연적인 오해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어떤 포지션으로 실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들의 생각, 감정, 경험은 언제나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 표정에서 단편적인 정보를 얻고, 그것을 우리의 경험과 관점에 비추어 해석할 뿐이다. 이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오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관계에서도 깊은 이해보다는 섬세한 오해의 층위가 쌓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의 진정한 의도나 내면의 풍경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이해 불가능성은 때때로 우리를 외롭게 만들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나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우리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진정한 자신을 은폐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타인이 곧 지옥이 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진짜라고 착각하며, 그 거울에 비친 이마고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고치려 애쓴다. 그러나 그 노력은 결국 또 다른 오해를 낳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오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이 나를 오해하고, 내가 타인을 오해하는 것은 삶의 본질적인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필연적인 오해를 두려워하며 위축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이 필연적 오해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어차피 타인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들의 기대와 판단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삶은 길지 않다. 그리고 특별한 여정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았다는 걸 슬프게도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사실 그들이 나에게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다 한들 뭐 어쩌겠는가?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다. 관계는 어차피 오해 속에서 존재하며, 그 오해의 간극을 받아들이고, 무의미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용기가 삶의 본질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