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나의 오로라

13. 환상의 오로라, 삶도 오로라

by 불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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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늙은 침엽수들을 집어삼키려는 회오리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을 초록의 불길로 태워버렸고, 무너진 하늘 사이로 사나운 龍 한 마리가 올라갔다.


지구 밖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과학기술로 마음먹고 레이저 쇼를 벌인다면 그 정도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하랴마는, 오로라에는 쇼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라고 할 때의 그런 빛이랄까. 복제複製와 재생再生이 불가능한 태초의, 유일한.


북위 62도에 위치한 캐나다 옐로나이프(Yellowknife). 나는 ‘오로라 헌팅’을 떠났다. 차를 타고 오로라가 잘 보일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투어. 차량에는 나 외에 세 명의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제 이어 두 번째 나서는 투어라고 했다.


몇 겹의 방한복을 껴입고 방한화를 신고 중무장을 했다지만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기온에 칼바람이 몰아치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차에 타고 있다가 오로라가 나타나면 밖으로 나서가 감상하다가 이내 들어와 몸을 녹이기고, 다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


오로라의 황홀경에 빠진 나는 차 안팎을 들락날락하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어쩐지 다른 일행들은 1시간 쯤 지나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카메라 삼각대를 이미 접었고, 좌석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는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 모습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나는 물었다. “아니, 이 좋은 걸 왜 안 보세요?” 돌아오는 대답, “저희는 어제 실컷 봐서요. 그리고 오늘은 별로네요. 어제는 붉은 빛깔도 나고 푸른빛도 강하고 훨씬 멋있었는데...”


어제 그들이 봤다는 광경이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 순간의 오로라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지금 나의 감흥을 겪어보지도 않은 어제 그들의 그것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즈음, 하늘은 한 번 더 푸른 불길로 난리가 났다. 눈으로도 카메라에도 담을 수 없어 양팔을 벌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오로라는 아마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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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같은 시간대에 2일차 투어에 나섰다. 동행자는 몇 시간 전에 옐로나이프에 도착했다는 여성 한 명뿐. 그녀는 가이드에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에 대해 물었다. 계절과 기상상태에 따라 오로라의 강도와 빛깔이 달라지며 보통 1년에 삼분의 일 정도 볼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 밖으로 나갔다. 날은 어제보다 흐리고 더 추웠다. 순간, 밤하늘로 희미하게 초록의 스크래치가 지나갔다. 그녀는 오랫동안 간직했던 버킷리스트를 드디어 이루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그날의 오로라는 전날에 비하면 오분의 일 수준에 불과했다. 들락날락 하는 일이 힘들고 추워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계속 차 안에만 머물렀다. 바깥에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신이 난 그녀는 차창을 두드리며 내게 말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안보세요?”


순간 나는 ‘어제보다 별로네요’라는 말을 꾹 눌러 삼키고, 몸이 안 좋아서 그런다고만 대답했다. 굳이 어제 보았던 광경을 묘사하여 그녀의 감동을 반감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긴 내가 뭐라고 이야기하든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인생 최고의 오로라를 만나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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