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처럼 아주 천천히

14. 초속 5mm로 해가 지는 곳, 루앙프라방

by 불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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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했지. 루앙프라방은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곳이라고.

그래서였나. 매일 거닐던 메콩강의 해넘이는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어.

푸시산 정상에 올라서 볼 때나 강가에 앉아서 볼 때나

해는 스스로 만든 노을을 뭉개며 더디게 산을 넘었지.


예전에 나는 일출을 아주 좋아했어.

스무 살 무렵 떠난 국토여행에서 모든 일정을 해가 떠오르는 동해안으로 잡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일몰이 좋아지더군.

해지는 풍경을 보는 일은 해돋이처럼 부지런을 떨어 새벽을 깨울 필요가 없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보아도 좋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아도 좋으니까.

해넘이 장소는 어느 곳이어도 감흥이 있지.

빌딩숲 사이를 물들여도 멋지고

흰 소가 풀을 뜯는 논두렁이면 정겹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을 안아주면 따뜻하니

저마다의 사연만큼 일몰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워.


꽃잎이 지는 속도가 초속 5cm라고 했던가.

그러면 서쪽으로 해가 떨어지는 속도는 아마 초속 5mm 쯤 될거야.

이제 나는 일몰처럼 인생을 보고 싶어.

언제나 지금의 나이가 내가 살아본 최후의 순간일 테니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쓸쓸함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스물에는, 서른에는, 마흔에는, 꼭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자기계발서 따위의 유혹을 떨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자책과 무엇도 되지 못했다는 강박을 놓으려고 해.

그리고 시간을 조금은 비끼어 서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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