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도 뱃사공에게 한국어로 듣는 바라나시 이야기
늦은 오후, 갠지스강의 일몰을 보기 위해 철수 씨의 나룻배를 타러갔다. 열두 살 때부터 25년째 뱃사공을 하고 있다는 철수 씨. 그는 오래전 이곳에 왔던 한국인 탐험가와의 인연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단다. ‘철수’는 그 탐험가가 붙여준 이름. 독학으로 배운 것치고 철수 씨의 한국어 실력은 괜찮았다.
철수 씨는 천천히 노를 저으며 갠지스의 전설과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한국어 표현들은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구체적이고 세밀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확실히 성글었다. 예를 들면, 그의 ‘아파요’는 몸이 병드는 것과 마음이 아린 것이 구분되지 않았고, ‘슬퍼요’에는 슬픔을 느끼는 주체가 누구인지 모호했다. ‘없어져요’라는 말에는 사람이 죽는 일과 시신을 화장하는 일, 세월이 흐르는 것과 인간의 망각이 혼재되어 있었다.
나룻배는 화장터 가트*가 보이는 지점에 잠시 머물렀다. 화장터에는 장작더미가 여럿 보였다. 천에 싸인 시신은 강물에 몇 번 적셔진 후 장작더미에 올려졌다. 천에 쌌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형체가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이윽고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붉은 불길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서서히 사라져 갔고, 지켜보던 유족은 고개를 돌려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화장에 쓰는 나무의 종류와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장작더미를 보면 망자와 유족의 주머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고. 나는 유난히 왜소한 그것에 눈길이 갔다. 장작에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늦게 불을 지핀 다른 장작들은 활활 타오르며 화염 속의 망자들이 천상을 향해 떠나가는데, 왜소한 장작에 누운 망자는 좀처럼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저러다가 제대로 산화하지 못하고 불이 꺼져 버린다면… 아까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개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방인의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바라나시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 전기화장터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철수 씨는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 화장한 재를 뿌리면 윤회의 사슬을 벗게 된다는 믿음이 인도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란다. 왜소하나마 성스러운 강가에서 장례를 고집했을 유족의 정성과 갠지스에서 이승을 떠나는 망자의 흡족한 마음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작의 불길이 약하다고 해도 그건 인도에서 많이 쓰는 표현대로 ‘No problem’일 테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불길에 휩싸인 망자(亡者)들, 그들의 회한을 살아있는 자의 성근 시선으로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갠지스 강물에 유골을 뿌리고 그 물에 양치를 하고 빨래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을 이방인의 성근 시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가트(Ghat) : 강과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을 뜻한다. 바라나시 구시가지에는 80여 개의 가트가 갠지스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