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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명 Mar 29. 2017

붉은 소금 하얀 소금, 천년 동안 만들어도 맛은 같다

천년 노동으로 일군 소금밭 옌징 - 최종명의 중국 대장정(04)

티베트에 들어서면 마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찾으면 마음이 놓인다. 최고의 호텔에서 묵는다는데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다. 간밤에 꼬불꼬불 산길을 20분이나 내려와 야외 온천으로 유명한 취쯔카(曲孜卡) 향(乡)에서 하루를 묵었다. 란창강(澜沧江) 줄기에 섭씨 80도까지 오르는 온천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설산 아래 살아가는 사람에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온천이 곁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천 년 역사를 품은 소금밭 옌징(盐井)의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내려갈 때는 어두워 볼 수 없던 길을 가파르게 오른다. 지난밤에 이곳을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염전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는 차마고도 문화전시관이다. 차를 싣고 가는 말과 일심동체인 사람을 조각해놓았다. 한눈에 봐도 ‘차마고도’를 실감 나게 만들었다. 조각상만 봐도 험난한 여정이자 혈투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경외심이 일어난다. 끌고 밀고 가야만 하는 길, 영양분인 차의 공급을 위한 절체절명의 길이었다. 차마고도의 생명이라 일컫는 소금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염전 입구 차마고도 조각상
공사중인 염전 가는 길

염전으로 가는 길이 도로 공사 중이다. 우리나라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로 이미 잘 알려진 염전을 향해 가는 길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컸다. 자연스레 차마고도를 걷게 됐다. 느긋하게 주변 풍광도 구경하고 염전과 오랫동안 호흡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다. 초록으로 무성한 능선에 옹기종기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길을 따라가면 연붉은 흙으로 덮인 험준한 산이 병풍처럼 나타난다. 더멀리 보이는 산에는 황토가 선명하다. 수억 년 전 시차를 두고 차례로 융기를 연출한 흔적이다. 소금밭을 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신비로운 절경에 가슴이 설레게 된다.


공사 현장을 돌아 나가니 멀리 염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스(S) 자로 흐르는 강물은 마치 홍색과 황색을 섞고 다시 물을 많이 탄 듯한 빛깔로 유유히 흐른다. 강 너머로 건너가는 다리가 두 개 놓여 있고 염전도 또렷하게 보인다. 건너편 마을에는 초록이 무성하면서도 아담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여러 가지 은은한 색감이 잘 어울린 한 폭의 이국적 산수화처럼 보인다.

염전을 배경으로 한 컷!

지금도 재래식으로 소금을 만든 흔적이 여전하다. 며칠 동안 많이 내린 비로 염전에는 일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소금이 맺힌 채 남아있기도 하고 물을 고인 우물도 몇 군데 보인다. 해발 약 2,300m에 위치하는 고원이면서도 온대성 기후와 연평균 강수량이 겨우 450mm 정도, 일조량이 풍부한 자연조건이 차마고도 최고이자 유일한 소금 생산지가 된 것이다.


신기한 점은 토양과 산세에 따라 홍염과 백염 두 종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염분을 머금고 융기한 땅에 설산이 만나 이뤄진 천연의 조화가 아닐 수 없다. 매년 3월부터 소금 생산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설산이 녹은 물이 풍부한 수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강 서쪽은 지세가 완만해 염전이 넓게 형성되고 손쉽게 많은 양을 거두게 되는데 주로 홍염을 생산한다. 동쪽은 가파른 형세라 염전이 협소해 결정이 잘 맺어지지 않고 주로 백염이 생산된다. 그래서 생산량이 많은 홍염이 백염보다 가격이 더 싸다.

염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마을
천년 염전

강물이 세차게 흘러간다는 것은 그만큼 협곡이 깊다는 뜻이다. 나무로 기둥 받침을 쌓고 그 위에 층층 만들어진 염전까지 지하수를 끌어올려야 한다. 가장 힘겨운 노동이 바로 물통에 이고 소금밭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그러면 햇빛의 도움으로 천일염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원시적이다. 지금도 예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변함없이 이뤄지는 일. 자연환경이 만든 이런 제조방식은 유일무이하기도 하지만 1,300여 년이나 줄기차게 유지됐다.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보물이 2008년 중국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보존되는 것은 당연하다.


옌징이 티베트 땅이어서 티베트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주민들은 나시족(纳西族)이 훨씬 많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1세기경 티베트 왕 게사르(格萨尔)와 나시족 왕 창바(羌巴)가 염전 쟁탈전을 벌인다. 게사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창바의 아들 유라(友拉)를 생포한다. 이후 유라는 게사르 왕의 충직한 신하가 됐고 염전을 하사 받는다. 두민족 사이의 조화를 상징하는 미담인지 모르나 ‘티베트 땅의 나시족 염전’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충분한 설명은 아닌 듯하다.

천년소금밭 마을
다큐 <차마고도>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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