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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Jan 03. 2021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한 해를 보내며

코로나 바이러스는 정말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연말이면 흔하게 하던 이런저런 송년회 모임은커녕 개인적으로 만나던 친한 친구들 얼굴조차 못 보고 한 해를 마무리했다.

외부 모임 대신 집에서 리모컨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TV 프로그램을 섭렵하다 보니 연예 대상이니 연기 대상이니 하는 각종 연말 시상식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방역 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쓴 연예인들이 나와 수상자를 발표하고, 수상자는 사람 대신 로봇이 가져다주는 트로피를 셀프로 받는 장면들이 연출되는 생경한 시상식이 아닐 수 없었다. 연기나 연예 활동을 하는 방송인들에게는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한 노력에 대한 평가를 상으로 받는 것이니 무척이나 의미 있는 자리였을 텐데, 동료들과 관객 없는 텅 빈 무대에서의 수상에 아쉬운 마음도 컸을 것 같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시청자 입장에서도 뭔가 김빠진 듯한 시상식들이었다. 또 커플상에서부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갖가지 상은 왜 그리도 많은지, 우수한 작품과 연기자, 방송인들을 선정해 상을 준다기보다는 방송에 나왔던 모든 연예인들에게 골고루 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많은 이들이 수상의 기쁨은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럴수록 상의 가치와 의미는 빛이 바래지는 느낌이랄까.




회사에서도 매해 ‘자랑스런 **인상’이라는 공로상 시상식이 있었다. 각 부문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직원을 추천하면 심사 후 선정된 직원에게 창립기념 행사 때 시상식을 하며 상장과 상금을 주었다.

보통 부서장이 직원을 추천했는데, 한번은 팀장들에게 '타의 모범'이 되는 직원을 추천하라는 메일이 온 적이 있었다. 선발 기준은 ‘주어진 업무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성과 창출에 기여하는 사람, 어떤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수행하며 맡은바 사명감을 가지고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 활기찬 팀 문화 구축에 기여한 사람’ 등등 기준도 참으로 거창했다. 선발 기준표의 파일에는 지난 10년 동안 ‘자랑스런 **인상’을 수상했던 명단이 함께 있었다. 그동안 누가 이 자랑스런 상을 받았었는지 쓱 살펴보았더니 낯익은 이름도 눈에 띄었다.

'아, 그 직원이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나?' 피식 실소가 나오는 사람도, 그리고 지난번 회사의 인원 감축 시 권고사직을 받은 인물도 몇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타의 모범'이라고 상 받고 박수 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 회사의 정리 대상자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분명 '타의 모범'이 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왜 그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그리 정반대가 되어 버렸던 것일까?

그렇게 세상 중요한 인재로 대우받다가도 기계의 한 부품처럼 쓰이다 쓸모없어지면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누가 그 조직을 신뢰하며 '타의 모범'이 될 수 있을는지. 그리고 그런 상이라면 어느 누가 그 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상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지.    


화려해 보이지만 별 기대감도 감동도 없었던 연말 시상식들을 바라보며 지난날 회사의 씁쓸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연말이었다.

각종 방송 시상식에도 그 상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변화와 노력이 필요해 보이지만, 어찌 되었건 내년 연말 시상식에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라도 꼭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긴 그런 일상이 돌아온다면 그동안 못 본 사람들 만나러 다니느라 집에서 TV만 보고 있진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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