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행동할 수 있는가? 감정의 행동선

두려움을 다루는 마음의 기술

by 정헌

‘감정의 행동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뭔가 하면 바로 사람이 행동할 수 있는 감정 상태의 기준선이다. 이 기준선을 넘어서면 행동할 수 있고, 이 기준선을 넘지 못하면 행동하지 못한다. 기준선 위는 행동의 영역이고, 아래는 두려움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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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행동선 아래에 존재하는 두려움


기준선 아래의 상태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행동하지 못하고 미루거나 외면하게 된다. 보통 ‘나중에’, ‘때가 되면’, ‘지금은 준비가 안 됐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분 전환을 핑계로 다른 것들로 관심을 돌린다.


특히 이것은 게으름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등 기분전환을 위한 감정의 도피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정의 행동선 아래의 기저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결코 불안감을 해소하거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자신의 삶에 불만이 계속 생기고, 자신의 게으름을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감정의 행동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행동할 수 있는 감정 상태를 만들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이 감정선을 넘기 위한 노력이다. 예를 들어 번지점프나 다이빙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 우리는 할까 말까 왔다 갔다 계속 망설인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두려움을 느끼며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하나 둘 셋을 세기도 하고,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쳐보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행동들은 감정선을 넘기 위한 노력들이다. 나의 전작인 <행복하지 않아서 뇌를 바꾸려고 합니다>에서 얘기했던 3초의 법칙이나, 정신 교감 등도 모두 이 선을 넘기 위한 준비운동 과정이다.


감정의 행동선은 다른 표현으로 감정의 저항선이기도 하다.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픈 뇌의 방어 본능이다.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 스스로를 막는다.


‘청중들 앞에서 망신당하면 안 돼.’, ‘이 글을 발표하면 비난을 받을지도 몰라.’, ‘내 의견을 얘기하면 비웃음을 살 거야.’ 같은 생각들이 저 선 너머에는 위험이 있다고 경고음을 울린다. 그래서 안전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에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선 아래를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안전함은 같은 영역의 한 편이다. 두려운 마음에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깨달아야 할 사실은 본질적으로 이곳은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힘은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아 나서야 생존할 수 있고, 나무 위에 올라가야 포식자로부터 피할 수 있다. 그냥 두려움에 가만히 있는데 안전해지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결국 안전함이라는 인식은 두려움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며, 두려움이 만드는 핑계일 뿐이다.


따라서 준비가 완벽하게 되기 전까지는 나서지 말라고 얘기는 안전함의 탈을 쓴 두려움의 변명이다. 결국 본질은 두려움이라는 강력한 감정이다.


감정의 행동선 위에 존재하는 두려움


그런데 감정의 행동선 위에도 두려움이 존재한다. 즉,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는 경우다. 행동선 아래의 두려움이 “무서워서 못하겠어.”라는 감정 상태라면 행동선 위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해.”라는 감정 상태다. 이것은 감정선 위에 있기 때문에 행동의 영역이다. 즉, 두려움으로 인해 행동하는 상태다.


재미없는 회사 생활을 억지로 하는 것은 퇴직 후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수입이 없어졌을 때의 생존의 위기감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현재의 불만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다 회사 생활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더 커지면 두려움을 이기고 회사를 그만두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두려움으로 인해 원하는 행동을 못하기도 하고, 두려움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행동을 억지로 하기도 한다. 전자는 두려움의 감정을 이겨내고 감정의 행동선을 넘어서야 하며, 후자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대안이 만들어지면 쉽게 멈출 수 있는 행동이다.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의 요소를 제거한다면 감정이 제거되고 행동은 멈춘다. 두려움이 억지로 행동의 영역에 잡고 있는 힘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전자의 행동, 즉 감정의 행동선을 넘어 두려운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만들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 감정의 행동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감정의 행동선은 두려움을 다루는 마음의 기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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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알아야 할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감정으로는 지루함이 있다. 우리는 재미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한다. 재미없는 책, 재미없는 영화, 지루한 회의에 계속 집중하기는 불가능하다. 두려움이 선을 넘어서기 어렵도록 당기는 힘이라면, 지루함은 감정의 행동선 아래로 나의 마음을 계속 잡아당기는 힘이다.


우리가 재미없는 일을 할 수 있을 때는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두려움이 더 강력할 때뿐이다. 당장의 보상이 없더라도 재미있는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이 재미없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봉사 활동을 하는 이유도 지루함보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감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일치시키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은 행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원하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행동을 만들 수 있으려면 감정의 행동선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자신의 행동을 막는 두려움과 지루함을 넘어설 수 있는 감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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