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냉장고가 고장이 난 적이 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AS를 신청했는데, 무려 10일이 걸렸다. 그 10일 동안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와 응급처치를 했고, 상할 수 있는 음식은 되도록 빠르게 먹어 치웠다. 10일도 잘 버티는 김치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살아오면서 냉장고가 없는 불편함을 처음 느껴봤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불편함은 매우 강력했다. 냉장고를 교체하고 다시 작동할 때의 기쁨을 통해, 냉장고는 평소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어디 그것이 냉장고뿐이겠는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내 삶에 이미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지금 나의 일상 하나하나가 미처 알지 못하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현실을 무시하고, 미래만 생각하는 생활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내가 상상하는 그 언젠가는 쉽사리 오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는 모습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을 살지 못하면 인생은 없다. 나의 삶의 행복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즐길 수 없는 인생은 참는 괴로움뿐이다. 그러기에는 인생의 낭비가 너무도 심하다.
찾기 힘든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하지만 지천으로 널려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 주변에 있는 행복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전환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누리는 행복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고 느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내가 무시하면 그 행복은 더는 나의 행복이 아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이미 가진 행복을 버리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환상을 좇는 데 사용한다면 결코 좋은 인생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현실을 살아보려는 노력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나는 내가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고,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상의 진짜 모습은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달랐다. 나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의 존재 여부는 지구인의 삶에 전혀 중요치 않았다. 내가 지금 당장 사라져도 세상은 아주 잘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나의 꿈을 계속 꾸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바라보는 곳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되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의 시작은 계속 미래만 보고 달리다 보니, 그냥 힘이 들어서였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자신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지금, 이 순간의 삶은 안 좋은 것일까? 아직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 내 삶은 엉망진창인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부정한다면, 내 삶에는 무엇이 남아있는 것일까? 현재의 나에 관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면서 왜 남들에게 나의 모습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노력하는 그 모든 것들은 가짜가 아닐까? 그것은 실재하는 모습일까?
내가 나를 똑바로 바로 보지 않으면서 세상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은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던지는 많은 질문 속에서 스스로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족하다. 그리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나는 살아왔다. 견뎌냈고, 버텨냈다. 그리고 나는 느낀다. 그리고 더 잘 느끼고 싶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 상태가 나다. 그리고 내 존재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 큰 의미는 없을지라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만이 나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
지금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먼 훗날의 상상 속 가짜 내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나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나의 모습이고, 그것이 숨 쉬는 유일한 삶이다.
숨을 쉬어라. 나를 위해서
나를 구성하는 원소와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는 동일하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압도적 다수의 원자는 생명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 우주에서 생명체로 태어난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본연의 비 생명체로 돌아간다. 그것도 우주의 입장에서 매우 짧은 시간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기하고 기적적인 찰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지구에서 생명으로 머무는 짧은 시간. 생명으로 태어난 나를 온전히 느껴라. 생명으로 태어난 걸 즐기려면 화내는 시간조차 아깝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 내가 누리는 행복들. 심지어 숨 쉬는 것까지.
다른 걸 멈추고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을 느껴보자. 우리는 느끼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누려라. 나를 둘러싼 주변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시선을 옮겨라. 내 인생이 지금 여기에 있다.
숨을 쉬어라.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