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상황에 화를 내고 있는 거야?

화를 내는 원인과 대상은 다를 수 있다

by 정헌

화를 내는 이유가 반드시 지금의 상황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이후에 생긴 작은 트리거에도 화를 낼 수 있다. 이때 눈앞의 대상에게 화를 내지만, 그 화의 원인은 그 이전의 스트레스 상황이다. 즉, 화를 내는 원인과 대상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를 실생활에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만일 누군가 기분이 안 좋으면 우리는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도 이 상황에서는 화를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대가 나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가 아닐지라도 나에게 화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는 진짜 원인이 지금의 상황 때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생긴 감정을 나에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의 원인 역시 다른 이유 때문일 수 있다. 매우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는 타인의 작은 실수도 지적하며 화를 낼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제3 자에게 발산하는 것이다. 누군가 평소와 다르게 극도로 화를 낸다면 ‘뭔가 다른 안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까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만들어 낸 대상에게만 해소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대신 감정을 발산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은 이러한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많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벼운 감정들은 그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설사 감정적으로 대했더라도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경우다. 마음 깊은 곳에 감정이 숨어 있으면, 우리는 왜 기분이 안 좋아지고 화가 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 이를테면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고, 불안해하는 감정들의 원인이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정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무언가 나의 감정을 두렵고 긴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누군가 내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반응한다. 화를 내거나 무시하거나 쌀쌀맞게 대한다. 나의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원하지 않는 행동으로 후회를 만들어 낸다. 이 행동을 유발하는 감정의 원인은 상대방이 아닐 수 있다. 내 마음속에서 발현된 그 무언가 때문일 수 있다. 그것은 분명 나의 감정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고, 우리는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뒷.jpg


그러면 나는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은 다혈질, 성격이상자, 고집불통으로 나를 평가하게 된다. 당연히 인간관계를 비롯한 삶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며, 여러 가지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정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감정이 켜지면 삶은 그대로 조정당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모든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내 기분이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강력한 감정 기억이다. 감정은 언제나 이성에 우선한다. 그리고 감정은 행동을 만든다. 그래서 이 깊은 감정이 발현되면 우리의 삶은 그대로 끌려간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보호 시스템이 생존에 필요한 기억으로 강력하게 저장하고, 필요시 수시로 발현시킨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유전된다. 조상들은 생존 기억을 자손들에게 DNA를 통해 물려준다.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손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마치 생존 노하우를 적어서 물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매우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여 자손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 방식이 수십만 년 전의 생존에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우리 몸속에는 물려받은 조상들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이 나의 감정이 아닐 수 있다. 과거의 감정이나 더욱 먼 조상들의 감정이 지금 내 몸 안에서 되살아나면 우리는 당시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몸의 생존 시스템은 지금 상황이 그때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트라우마 기억을 방출한다. 생존 시스템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조상들의 트라우마 기억은 거의 괴롭고, 힘들고, 충격적인 감정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감정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감정 안에서 행동하게 된다.


누구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것의 의미는 누구나 트라우마가 발현되는 때가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삶을 망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의도와는 다르게 행동하고, 내 앞을 가로막는지 알아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 숨어 있는 감정을 모르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알 수 없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모르면, 우리는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과연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다짐만으로는 내 인생을 바꿀 수 없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뇌가 아픈 사람들. 구 버전의 뇌 작동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