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건드리는 대화들 :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일상의 대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사람마다 같은 표현도 다르게 한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살 긁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수많은 감정의 소통이 난무한다.
그런데 가까워지거나 익숙한 사이일수록 감정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많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온다. 이는 연인이나 부부, 가족 관계처럼 밀접한 사이일수록 두드러진다. 처음에야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는 감정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모든 감정은 식는다. 마치 열역학 제2 법칙을 알고나 있는 듯이, 엔트로피를 흉내 낸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뇌 강아지는 찌그러지고, 좌뇌 강아지의 시간이 돌아온다.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보이면서 말투가 달라지고, 슬슬 긁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오기로 했던 것을 실수로 빼먹었다면, 상대는 ‘그걸 안 사 오면 어떡해?’라며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 톤이 높이 올라간다. 말투와 표정을 보면, 전체 내용은 “바보같이 그것도 똑바로 못해 진짜.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는 비난임을 상대도 금방 알아챈다.
우리는 단어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대화한다는 걸 다시한번 상기하기 바란다. “아~ 됐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진짜 됐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의 예는 모든 가정과 관계에서 수도 없이 들 수 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기분 나쁘지 않게 해결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는 감정 공격을 시작한다. 작은 일들도 서로의 감정을 툭툭 건드리며, 좌뇌 강아지를 자극한다. 마치 누워 있는 강아지를 막대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좌뇌 강아지는 슬슬 반응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좌뇌 강아지가 짖을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대화들이 계속된다.
상대를 탓하는 대화들 : 너 때문에 내가 못살아
그중에서도 ‘너 때문에’는 매우 공격적인 반응 중 하나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남을 먼저 탓한다. 자신의 잘못은 과소평가하고 상대의 잘못을 부풀린다. 예를 들어 재테크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실이 났다면 다툼이 시작된다.
“그러게 왜 이런 걸 하자 그랬어? 지금 손해가 얼마야!”
“나도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몰랐지. 그리고 같이 얘기해서 한 거 아니야?”
“좋다고 하도 우기니까 그냥 맞춰준 거지. 어쩔 거야 이제?”
이는 분명히 함께 논의해서 결정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명백히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동의하거나 방관함으로써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과만 보고서 상대를 비판한다.
예상과 다른 일의 진행에 대해 이런 식의 대화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는 명백한 공격적 대화 방식이다. 나의 좌뇌가 공격하면 상대의 좌뇌는 방어를 한다. 왜 이것이 나의 책임이 아닌지,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고 좌뇌의 논리가 감정 좌뇌의 싸움을 후방 지원한다.
그 결과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방의 잘못만이 남는다. 심지어 상대방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인정을 하더라도 짜증은 강하게 남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나의 삶의 문제점은 ‘너 때문에’ 일어난다. 모든 것이 상대 때문이다. 하지만 찬찬히 고민해 보면 내 인생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고,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다. 그것이 내 생각이건, 상대의 생각이건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내가 결정하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사람의 말을 들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는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원망만이 남게 된다.
되새김 : 왜 너의 잘못이 더 큰지를 반드시 찾아내겠어
일단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심하게 다툰 경우, 감정 좌뇌는 이를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계속해서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 언제 다시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 좌뇌는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사건을 계속해서 반추한다. 싸움이 다시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말을 하면서 맞받아쳐야겠다고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리고 사고 좌뇌는 감정 뇌가 필요로 하는 싸움의 논리를 계속 생성한다.
‘그때 분명히 동의한 게 확실해.’, ‘하지 말라고 했으면 난 분명 안 했을 거야.’, ‘자기가 더 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느꼈어.’, ‘넌 그냥 방관하기만 하지만 난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항상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
이쯤 되면 나의 잘못은 작아지고, 조급하게 구는 상대방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계속 상황을 반추하면서 상황을 새롭게 구성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억을 재조합하며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구성은 나에게 진실이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는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서만 정당한 이야기를 계속 주장하게 된다. 당연히 접점은 사라지고 해결될 수 없는 감정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다.
남편이요? 제대로 신경 쓰지도 않고 매사에 무관심해요.
아내요? 매사에 예민하고, 말투가 공격적이예요.
이제 우리에게는 상대에 대한 감정만이 남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실수에서 교훈을 배울 수도 없다. 내 잘못이 아니라 남 탓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삶이 계속 된다면 이건 서로를 싫어하는 원수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 것만큼 커다란 불행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깔머리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