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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헌 Aug 04. 2024

살아가는 게 왜 이렇게 고통스럽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생존 프로세스

  우리는 존재가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다양한 불행을 경험하고 죽는다. 태어났다면 이제 고통과 걱정의 연속이다. 살면서 원치 않는 일은 계속 일어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도 또 다른 문제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목표를 이루어도, 돈을 많이 벌어도 가진 것이 많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만 번의 스트레스와 10만 번의 불안과 10만 번의 우울함과 10만 번의 가슴 통증을 느낄 것이다. 20대라면 70년을 더 느낄 것이고, 30대라면 60년을 더 느낄 것이고, 40대라면 50년을 더 느낄 것이다. 100세 시대니까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마치 그림자와 같은 동반자인 것이다.     


  생존하라. 그것만이 최우선이다.     


  태어난 것이 고통이라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그런데 사실 우주에서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압도적 다수의 원자들은 생명체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행운이고 축복이어야 할 생명으로의 탄생이 왜 고통이 되었을까?


  진화의 과정은 다양한 생명체들의 탄생과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과정이었다. 잠시 방심하면 다른 생명체에 먹히기 일쑤였고, 어떻게든 오래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진화적 변화를 거듭했다.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서 많은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목표였다. 모든 것은 그곳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생명체는 감정 뇌를 먼저 발달시켰고, 그 결과 스트레스 작용을 발달 시켰다.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순간 우리 몸은 스트레스 반응을 만들어 도피를 하거나 맞서 싸움으로써 힘을 내고 적극 대처한다. 하지만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거나 필요치 않을 때조차도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면 우리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스트레스 상황은 우리 몸의 전시 상태와 동일하다. 몸에서 필요한 모든 행동을 멈추고 가장 중요한 생존만을 위해 모든 에너지가 동원된다. 당연히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몸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이것이 우리 몸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생존 매커니즘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스트레스를 만들어낼 것이며, 계속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뇌는 이렇게 수 백 만년을 진화해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뇌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시스템과 태어나진 환경 속에서 뇌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 태어나서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온갖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뇌는 처절한 작용과 반응을 만들어왔다. 당신이 뇌를 어떻게 사용해왔던지 뇌는 자신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의 뇌를 존중한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뇌를 존중하는 것은 그것이 다르게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은 스스로 내면에 만든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많은 고통들을 겪는다. 거의 대부분은 사람관계에서 비롯된다. 꼰대 직장 상사, 진상 고객들, 시기 질투하는 사람, 개념 없고 이기적인 사람들. 온갖 종류의 사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을 떠올릴수록 열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 정작 힘든 것은 나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내가 부정성을 일으키지 않고서 남에게 먼저 화를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으킨 부정성은 나의 마음에서 먼저 불길이 일어나고, 스스로를 먼저 괴롭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만든 부정성의 첫 번째 희생자는 자기 자신이다. 남을 해치려면 자신을 먼저 해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를 욕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은 나를 욕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자신의 감정에 불을 지르는 중이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부정성을 일으켜서 스스로를 불행한 상태로 만든다. 그래서 사실 같이 화낼 필요가 없다. 내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이니, 누군가 나를 욕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굳이 같이 불 속으로 뛰어들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나에게 화를 내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차이가 없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니 자신을 해치지 말고 자신을 도와라. 그러면 세상도 반드시 나를 도와줄 것이다. 이것 역시 자연의 법칙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긴장을 하고 부정성이 생기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면 신체와 정신이 모두 긴장한다. 그러면 우리는 표면 수준에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음악을 듣고, 하소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생겨나고 깊은 수준에서는 끊임없이 긴장이 계속된다. 결국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계속해서 비참함을 증폭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의 원천으로 내려가야 한다.


  어디에서 부정성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마음의 습관이 어떻게 고통을 만드는 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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