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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부 윤석열과 이승만 ④법원 폭동, 이승만 시절 판박이

[뉴스하다]권력감시, 이승만 시절에도 폭도들의 법원 습격 있었다

by 뉴스하다

앞서 뉴스하다는 ‘독부 윤석열과 이승만’ 시리즈를 선보였다.


김건희와 프란체스카, 친일과 반공의 아버지, 정치보복과 비상계엄 등 윤석열은 이승만의 광적(狂的)을 쫓고 있다.


윤석열은 미래가 불투명한 자신의 통치 속, 과거 이승만의 광적에 집착했다. 윤석열과 이승만을 따르는 폭도들도 마찬가지다.


2025년 1월 19일 오전 3시께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순간, 윤석열의 광신도들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부렸다.


폭도들은 법원 유리를 깨고 들어가 판사실, 서버실 등 내부를 때려부수고 법원청사 외벽을 깨부쉈다. 에어컨 실외기, 경찰 바리케이드가 나뒹구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폭도들의 난동은 이승만 시절 반공청년단의 법원 침입사건 때와 같았다.


1958년 7월 5일 정오께 서울 서소문 법원청사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폭동을 벌였다. 이승만과 자유당이 키운 정치깡패 이정재 하수인들이 주도한 관제 시위였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제거하고자 꾸민 정치재판에서 유병진 부장판사가 간첩죄를 무죄 선고했기 때문이다. 반공청년단은 “죽여라 유병진, 때려잡자 유병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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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조봉암 사건을 맡았던 유병진 부장판사, 배석 이병용 배기호 판사는 109호 판사실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반공청년단은 당시 서울지방법원에 난입했다. 정치깡패 이정재 하수인인 반공청년단은 법원 정문을 지키는 수위를 폭행하고 청사 앞마당을 차지했다.


반공청년단은 수위와 경찰관을 제압하고 법원 내부로 들어서 유리창을 깨고, 유 판사 방을 찾아가 책상과 명패를 내리쳤다고 KBS는 전한다.


이들은 “죽여라, 없애라” 고함치며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했다. 대법원장 비서가 회의를 핑계로 면담을 거절하자 변옥주 서울고등법원장실로 몰려가 협박했다.


반공청년단은 “유병진이 조봉암이 간첩이 아니라고 하니 용공판사가 분명하다, 축출하라”고 압박했다.


반공청년단은 “엄벌에 처하라”고 윽박지르고 변옥주 법원장은 “알았다, 조봉암 사건은 2심, 3심이 남지 않았느냐”고 달랜 것으로 전해졌다.


무법천지였다. 당시 신문들도 사법부의 위기라며 “공산국가에서 훈련된 군중 의사에 따라 피고인을 처단하는 인민재판과 같은 행패”라고 보도했다.


반공청년단이 다년간 뒤 유병진 판사는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신도환 국회의원 집으로 피신했다.


조봉암 재판에 배석한 이병용 판사는 같은 우배석인 배기호 판사와 장모의 도움으로 친척집 다락방에 숨었다고 회상했다.

KakaoTalk_20250121_170129077.png 진보당 사건 판결에 불만을 품은 반공청년단이 법원에 몰려들어 폭동을 부리자 판사들이 피신했다는 내용의 기사. 1958년 7월 6일자 동아일보 5면 <세 판사 피신>.


세 판사의 무죄 선고에도, 조봉암은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승만과 자유당에 미움을 산 유병진 판사는 1958년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보복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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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7월 5일 서울 서소문 법원청사에서 일어난 혼돈은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폭도들은 소화기로 잠금장치를 부숴버리고 경찰의 방패를 빼앗아 무차별 폭행했다. 한 경찰관은 피를 철철 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7명이 중상을 입고 8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한 폭동은 6시에 진압됐다. 경찰 2천여 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마치 사전 연습한 것처럼 구호를 외쳤고 주도하는 세력이 있었다. 용역깡패들이 동원됐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폭도들은 구속영장심사를 맡은 차은경 부장판사 위치를 확인하고 “어딨냐? 나와라”를 목청껏 외쳤다. MBC 영상기자 등 취재진도 폭도들에게 폭행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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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차 판사는 청내에서 벗어났다. 폭도들 소식이 전해지자 차 판사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이승만 시절 법원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그를 추종하는 반공청년단이었다.


지난 9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열흘 후 법원 폭동이 일어났다.


법원 폭동에 대해 윤석열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변호인단을 통해 전했다.


이창호 기자 ych23@newshada.org

홍봄 기자 spring@newshad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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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hada.org/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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