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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스하다 Oct 21. 2024

[두 개의 동상] ④ 이승만 동상 재건, 누가 주도하나

[뉴스하다]조봉암과 이승만

인하대학교 내 이승만 동상을 복원하자는 주장은 개교 70주년을 앞둔 2023년 나왔다.


인하대와 총동창회가 2023년 6월 1일과 8일 개교7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위원을 위촉하고 나서 본격화했다.


기념사업준비위원회는 안길원 ㈜무영건축 회장이 총괄준비위원장을 맡았고, 조명우 인하대 총장, 신한용 인하대 총동창회장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왼쪽부터)신한용 공동위원장, 안길원 총동창회장, 조명우 인하대총장. 인하대.


준비위원회 안에는 역할에 따라 11개의 분과위원회를 뒀다. 기념물설립위원회도 그 중 하나다. 개교70주년 기념물 설립을 추진하는 역할이다. 김도현 인하체육인회장이 기념물설립위원장을 맡았다.


준비위원회가 추진하는 기념물이 이승만 동상은 아닐까.


총동창회는 지난해 5월 인하대학신문에 ‘동상 설립과 관련한 의견은 사업 의견 개진 과정 중 나온 목소리일 뿐이며, 구체적으로 확정된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분명 누군가는 동상 재건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


준비위원회가 꾸려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동상 재건을 요구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24일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인천지회는 창립대회에서 인하대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우자고 촉구하는 ‘이승만건국대통령 동상 되찾기와 복구 촉구 결의문’을 발표했다. 


인천지회는 결의문에서 “인하대 설립자이기도한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을 운동권 학생들이 강제철거한 행위는 사실상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로서 테러였다”며 “당장 이승만 건국 대통령 동상을 인하대 교정에 다시 올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승연 인하대 교수도 이 자리에 참석해 이승만 동상 재건에 힘을 실었다. 현재 대통령 비서실 정무2비서관인 정 교수는 2007년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시국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 교수는 “인하대에 자랑스러운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동상이 내려져 있다”며 “다시 이런 것을 원상태로 돌리고,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몇 달 전에 신한용 총동창회장과도 동상을 다시 세워야한다는 문제, 내년이 인하대 건립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인하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교육과 나라를 다시 살리려고 했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동상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신한용 총동창회장과 동상을 재건해야 한다는 입장을 논의했다는 것. 인하대 이승만 동상 재건 주장은 인천지회의 또 다른 행사에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12일 허식 당시 인천시의회 의장은 라마다송도호텔에서 열린 송년 우남문화제 축사에서 “내년이 인하대 70주년인데 반드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세우겠다는게 지금 총동창회의 목표”라며 “저희 의회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승만건국대통령 동상 되찾기와 복구 촉구 결의문’을 발표한 그날 행사를 비롯해, 인천지회가 주최한 행사마다 김도현 기념물설립위원장과 함께 인하대 총동창회 관계자들이 내빈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인천지회 1주년 행사 내빈. 에녹부흥tv 갈무리.


동상복원 주장은 학교와 총동창회가 주최하고 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주관한 행사에서도 나왔다. 


이종우 전 총동창회장은 2023년 9월 21일 인하대 개교 70주년 학술심포지엄에서 “지금 뭐가 무서워서 못합니까. 우리 총장님이나 동창회장님이나 열심히 해서 빠른 시일 내에 동상을 세워주셨으면 부탁하는 바”라며 동상 재건을 촉구했다.


안길원 기념사업준비위원회 총괄준비위원장도 지난해 언론을 통해 “인하대는 이 전 대통령이 ‘공업입국’ 정신으로 설립한 학교”라며 “국민 성금으로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까지 짓는 시대에 인하대도 창학자의 뜻을 기려 교내에 동상을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길원 인하대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총괄준비위원장 발언.


동상 재건 여론 조성 선두에는 ‘인천일보’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인하대 이승만 동상’을 다룬 기사는 총 25건이다. 


관련성이 떨어지는 기사 7건을 빼면, 인하대 이승만 동상(조형물)을 다룬 기사는 9개 언론사에서 총 18건이다.


이중 인천일보는 7건의 관련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2건 씩이고, 이밖에 언론사가 모두 1건 정도 이 사안을 다룬 것에 비하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다수 언론이 이승만 동상 재건 ‘논란’을 보도한 반면, 인천일보 기사는 7건 중 6건이 이승만 동상 또는 조형물 재건을 옹호하는 입장을 담았다.


인천일보는 2023년 8월 28일자 ‘통합 시험대가 될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의 ‘이승만 동상 건립 안건’이 반대에 부딪혔다고 짚으면서, ‘무엇보다도 과거의 일로 미래를 향한 발목이 잡혀 인천의 갈등을 후대가 떠안고 갈 수는 없다’고 작성했다. 


올해 1월 25일자 기획기사 중 인하대 1회 졸업생인 남종우 명예교수 인터뷰에도 동상 복원 주장을 실었다. 남 교수는 인하대 70주년 기념물설립위원회 고문이다.


지난 6월, 다수 언론들이 인하대 이승만 조형물 설치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보도했다. 이승만이 부각된 조형물 설치를 두고 논란이 격해지자 6월 21일 예정된 기공식까지 취소됐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인천일보는 해당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관련 칼럼이 나온 것은 한 달 뒤인 7월 17일. 


‘인하대 ‘이승만 조형물’ 세울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이미 총동창회가 이승만 조형물 건립을 시도했고 찬반 논란이 지나간 후에야 나온 보도다.


칼럼은 “대학 설립자가 친일 인사거나 부패한 사업가라도 동문들이 설립자 동상을 쓰러트린 사례는 없다. 인하대가 또 한 번 우남의 대학 설립정신을 외면하고 씁쓸한 상처와 고초를 후대에 남기게 될까 우려된다. 인하대의 각별한 창학 역사와 배경을 왜곡 없이 수용하는 것도 개교 70년을 기념하는 수확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작성자는 인천일보 김형수 주필. 인하대 출신인 김 주필은 총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인하동창회보 편집주간을 맡는 등 총동창회에서 주요 역할을 했다. 지난해에는 개교7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홍보편집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인하대 총동창회와 인천일보 업무협약식. 인하대총동창회.


준비위원회 위원 위촉식 이후 인천일보와 인하대 총동창회는 2023년 8월 3일 인천일보 회의실에서 ‘인하대학교 개교70주년기념사업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인천일보 말고도 ‘이승만 우상화’에 발을 들인 방송사가 인천에 또 있다. 바로 경인방송이다. 인천을 연고로 한 유일한 지상파 라디오다.


2023년 5월 31일 당시 강효상 경인방송 대표이사는 영남일보의 ‘이승만과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고를 작성했다. 


이 기사는 ‘과연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서조차 동상도 세우지 못할 정도의 독재자였는가?’라는 질문에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씨를 뿌린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언제쯤 국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 미래세대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자답한다.  

강효상 전 경인방송 대표이사가 작성한 칼럼. 영남일보.


강효상 전 경인방송 대표는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구·조봉암 암살 배후, 이승만 동상 병존 ‘불가’

인천시민들은 1997년 10월 약 7억 원을 모아 인천대공원에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친일파 척결의 정신적 구심인 김구 동상을 세웠다. 


백범 암살의 배후로 꼽히는 이승만 동상이, 김구 동상과 함께 인천에 병존하는 걸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 동상 건립이 추진되는 조봉암과도 마찬가지다.

인천시민들 성금으로 인천대공원에 건립한 백범 김구 동상. ch B tv 인천 영상 갈무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1949년 연초부터 본격 친일파 척결에 나서면서, 이승만 정권 내 경찰 등 친일 공직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해 5월 경찰은 일명 ‘국회 프락치 사건’을 앞세워 국회의원 4명을 구속한다. 6월에는 반민특위 위원들과 국회의원 11명을 구속하는 2차 프락치 사건이 터진다.


6월 6일 경찰은 반민특위를 습격해 조사 서류를 탈취하고 요원들을 폭행하는 전대미문의 폭거를 일으킨다. 라용균 국회의원이 “이승만이 친히 명령했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6월 26일 김구가 친일·분단세력에 의해 암살된다. 포병 소위 안두희가 주일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차가 없어 자택에 있던 김구를 권총으로 쏴 절명시켰다.


백범 암살은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조소앙 증언(사건 발생 직전), 사건 당시 서울지검장으로 재직한 최대교 인터뷰(중앙일보 1992년 4월 15일) 등을 통해 배후에 이승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군 초기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등 요직을 거친 이형근도 안두희 배후에 관한 증언에서 권력 핵심부(이승만 지칭) 개입이 있었을 것임을 시사했다.


1971년 보안사령관에 취임한 강창성도 배후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승만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이승만 동상과 조봉암 동상 병립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승만은 조봉암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사법 살인했다.


1958년 1월 13일 이승만 정권은 간첩 혐의로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 7명을 구속했다. 이듬해 7월 조봉암을 사형에 처했다.

죽산 조봉암. 국가기록원.


당시 사법부는 국민 지지가 높은 조봉암을 제거하려는 이승만의 정치 의도를 헤아리고 사형을 선고했고, 검찰은 재심의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론을 주구장창 내세우고 있는데, 평화통일론으로 맞선 조봉암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민생은 날로 어려워지고 미국 원조에 나라 명운을 걸다시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봉암은 ‘복지사회’를 내세우고 연설했으니, 이승만은 1960년 봄으로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에게 패배할까봐 두려웠다.


1956년 11월 10일 진보당 결당대회 개회사에서 조봉암은 ‘복지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치 요즘 진보 정치인 연설 같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함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 말하자면, 우리들의 이상인 복지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1956년 5월 15일 열린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때도 이승만은 조봉암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상)>에는 진보당 경북도당 선전부장 이병희는 5월 6일 3명의 괴한에게 납치되어 “선거자금 출처가 어디냐”며 고문과 폭행을 당해 실신했다고 기록했다.


또 이 책은 부산 중구에서 진보당 측 참관인이 경찰에 연행된 뒤 이승만의 1만 표가 조봉암의 3만 표와 뒤바뀌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밖에 조봉암 선거 유세를 막기 위해 이승만은 테러, 협박, 공갈, 매수, 선거방해, 투개표 부정 등 온갖 범죄행위를 동원했다. 조봉암은 투표 일주일쯤 앞두고 암살에 대한 공포로 잠적했다.


인천시민들은 조봉암 동상 설립을 위해 약 9억 원이나 성금을 모았다. 조봉암 동상 설립을 주도하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도 이승만 동상 건립에는 회의적이다.

뉴스하다 제작진과 인터뷰하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홍봄 기자.


지용택 이사장은 지난 7월 31일 죽산 조봉암 서거 65주기 추모식에서 “(난) 이승만 물러가라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5.16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갔지. (그럼) 더 할 얘기 없지. 나는 찬성 안 하지”라며 이승만 동상 건립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 평전에서 “이승만의 비뚤어진 역사관과 권력욕에 호가호위한 아첨꾼들과 하수인 노릇을 한 관료·법조인, 언론·지식인들에게서 지금의 모습을 보게 된다”며 “한국사회 중심부에는 여전히 ‘아류 이승만식’ 반통일, 반민주를 획책하면서 1950년대 미몽에 사로잡혀 있는 부류가 활개친다. 이승만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무장독립운동이 고까웠듯이, 이 ‘아류’들에게는 4·19혁명이 낳은 ‘민주’와 ‘평화통일’의 정신과 가치가 그렇게 못마땅한 것이다. 5·16 쿠데타로 인한 가치전도 현상 때문이다. 모두 ‘이승만의 원죄’라면 그가 억울해할까”라고 밝혔다.


이창호 기자 ych23@newshada.org

홍봄 기자 spring@newshada.org

오나영 데이터기자 zero@newstapa.org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29Esn20l0sA

〈기사보기〉

[두 개의 동상] ➃ 이승만 동상 재건, 누가 주도하나

https://newshada.org/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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