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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온 지 어느덧 3일 차.
제주도에 큰 목적을 두고 왔던 건 아니다. 그저 언젠가 와보고 싶었던 공간이었고, 그저 오게 되었다.
무작정 편도로 제주도에 오게 되었지만, 그 상황에 맞게 여기저기 검색도 해보고, 맛집이라고 하는 곳들도 다녀보는 중이다. 제주도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여러 곳을 다니고 있지만 정작 여행 중에 생각을 정리해서 돌아온다거나, 가치관이 많이 바뀌어서 돌아온 경우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정리할 생각이라는 거 자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행지에 정답이 있어서 그것을 찾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무언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훌쩍 떠나곤 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저런 생각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정리가 되고,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기도 했던 거 같다. 새로운 장소에 와서 사진을 남기고,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어 내 생각이 크게 바뀐 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제자리 곤 하니까. 어쩌면 애초에 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건 아닐까.
여행에서 무언가 답을 찾거나, 생각을 정리하기보다 그 시간에, 그 순간에 진득하게 빠져보는 건 어떨까. 빡빡한 일정에 치여서 사진만 찍고, 밥만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무작정 멍을 때리고 있는 것도 좋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을 우연히 들어가 본다던지 말이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올라가 음악을 들으면서 말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울적한 노래가 나오면 괜스레 나도 울적해지고,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괜히 기분이 up 되기도 했다. 충분히 멍을 때리고 나니까 그제야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나에게 여행이라는 건 강릉에 있는 안목이라는 곳에 경치 좋은 카페에 자리 잡아 커피를 시켜놓고, 이어폰을 꽂고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너무 좋아서 굳이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지도 않고, 인터넷에 이것저것 찾아보지도 않았다.
사람들 마다 여행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생각의 정리나 답은 일상에서 찾고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즐겼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적혀있는 남들이 하는 그런 여행 말고 내 느낌대로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말이다.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고, 꼭 비싼 맛집이 아니어도 지나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밥집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말이다.
여행에서조차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가 뭐가 있을까. 나에게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