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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Feb 08. 2018

관계

일상의 기록#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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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고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볼 때 작년의 나이가 아닌 올해의 나이를 헷갈리지 않고 나이를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2018년의 1월도 어느덧 앞으로 보낼 날들보다 보냈던 날들이 더 긴 시간을 살고 있고, 외출을 할 때 두꺼운 목도리가 없으면 밖을 나가기 꺼려지는 겨울도 떠나기 아쉬운지 유난히 더 추운 요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이 깊어진다. 27년 1개월을 살아보면서도 아직까지 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았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유난히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살던 내 모습이 바뀐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중요했고, 패션이나 머리스타일에 유독 집착이 심했던 이유도 나의 시선이 안을 향해있는 것이 아닌 밖을 향해 있었으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중요했던 그 시절,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착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손해 보면서도 그게 손해가 아니라고 믿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나를 어떤 식으로 규정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자면 지독하게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인 경험이 참 많았다.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무리에 속하고, 내가 원해서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살면서 많은 결정을 나 스스로 했다고 믿고 싶지만, 삶의 대부분을 상대에게 맞추느라 정작 나를 위한 결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내가 관계에 있어서 조금 더 주도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건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했던 경험을 하고부터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일하던 중에 5월 근로자의 날과 겹쳐서 7일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떠나보기로 결정하고 짐을 챙겨서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가장 빨리 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아무 계획도 없이 전라도 광주로 떠났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시간이 조금 여유가 생겨 터미널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그 당시 22살이 돼서도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22살의 난 참 부끄러웠다. 티켓을 끊고, 혼자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지만 참 신기하게도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나를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류승룡이 나왔던 영화였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는구나 느꼈던 작은 시작이었다고 할까. 그 여행 내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집에 가서 소주도 마셔보고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책도 읽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갔다. 그 여행을 가기 전에는 시도조차 생각해 본 적 없었 일들을 우연한 계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해내고 있었다. 어쩌면 혼자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관계에 있어서 항상 나 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우선시하면서 힘들어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다녀온 뒤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완전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머리를 이상하게 자르거나 옷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돼서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어졌고, 부탁을 하거나, 거절을 하는 일에도 조금 더 수월해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22살의 내가 맺던 관계와 27살이 된 지금의 내가 맺어가는 관계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더 정의 내리기 힘든 것 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또 다른 관계의 결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굳이 무언가 정의 내리지 않아도 지금 모습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느껴진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나의 마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대단하게 보이는 순간은 아니었다. 비록 누군가에게 작아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음에 참 감사할 따름이다. 예전과 다르게 관계에 있어서 주도적이고 열정적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그 순간도 잠시뿐이었고, 지금은 굳이 열정적이거나 주도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한다는 걸 잘 안다. 어쩌면 난 그리 열정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은 아닐 테니 나 답지 못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 관계에 있어서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모두가 나를 좋아했으면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난 이제 없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더 믿어주어야겠다.


우리가 되려면 우선 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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