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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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군대를 가는 동생들을 만나기로 일주일 전에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이 되어서 막상 만나려니, 전날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친구들을 만나느라 늦게 자서 몸은 천근만근이라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먼저 만나자고 했던 것도 나였고, 다른 날 보다 일요일이 나을 거 같다고 말한 것도 나고, 전날 늦게까지 친구들 만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도 나였다. 그 순간순간 최선이라며 선택했겠지만, 그 최선들이 모여서 꼭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던 건 아니었다.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약속을 깨는 파렴치한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생들을 만났다.
내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평소보다 말수도 적어지고 표정도 그리 밝지는 못 했던 거 같다. 원래 술을 마시기로 했지만 결국 만나서 간단히 밥을 먹고 헤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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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퇴근을 하면 친구와 운동을 하러 가는 편인데, 오늘은 다른 친구에게서 술을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물론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시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동안에 운동도 게을리했던 터라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쉽지 않았다.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참 많이 찾아온다. 사소하게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신발을 무엇을 신고, 점심에 먹는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결정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익숙하고 편한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찾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결정에는 또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수반할 테고, 그 행동과 생각을 처리해야 하는 뇌는 분명 일거리를 더 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 익숙하고 안정적인 선택을 위해 새로운 결정에 '거부감'이라는 장치를 넣어둔 것이 아닐지. 나는 결국 친구와 술을 마시기로 선택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운동보다는 친구와 만나서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였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운동을 하며 몸이 느끼는 근육통과 다음날 몸이 무거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런 선택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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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부터 계획했던 친구들과의 여행을 가기 하루 전 한 친구가 자기는 빼고 여행을 가라고 통보를 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반대도 아니고 찬성도 아닌 반응을 유지했던 친구는 여행을 하루 남기고 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좋은 취지에서 여행을 계획했고, 다들 반응도 좋았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 거는 기대감이 커서 그런지 여행을 하루 남기고 갑작스레 통보하는 친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다들 소중한 주말에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은 당연한 사실이고, 2주 전부터 계획하고 시간까지 조율하느라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있어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을 안 간다는 친구가 참 야속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찝찝한 기분으로 여행을 갈 수밖에 없었고, 그 친구와도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다수의 행복이 우선이 되기도 하지만, 그 소수의 만족이 때로는 다수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의 행복이 다른 이들에겐 불행이 되기도 한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