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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Jun 04. 2018

어른 아이

일상의 기록#30



어른이란 뭘까? 19살 12월 31일에 밤 12시가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린 적 있다. 1월 1일이 되고 나면 당당히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으니, 그 떨리는 마음에 친구들과 저녁 늦게 모여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12시를 기점으로 불법에서 합법이 되었고, 그렇게 갑자기 어떠한 준비도 없이 난 성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대하고 기대하던 스무 살이 주는 짜릿함도 잠시 현실은 무겁고 비참했다. 모든 행동과 선택에 제약이 없지만, 그것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돌이켜보면 누구도 제대로 알려준 적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그저 뉴스로 보거나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보면서 간접경험했을 뿐. 고등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 대신 인간관계 잘 맺는 법이나 연말정산 계산법, 전세자금 대출 평가서류 같은 것들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저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적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하곤 했다.


그렇게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 경쟁하듯 자라왔다. 다른 누구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고 성격이 더 좋은 것도 아닐 테고, 공부보다 운동에 더 소질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오로지 입시에 모든 것을 올인해야 했던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지만, 그런 공부조차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는데 무작정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조차 스스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채로 수능을 보았고, 그저 그랬던 수준의 성적을 받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고 나면 하고 싶었던 연애든, 술을 마시든, 밤새 놀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어른들이 장담했던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대학에 가서도 시험에 치이고, 사람 관계에 치이고, 등록금에 치이고, 원하지 않는 전공을 갖게 되어서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하는 등 사탕발린 말에 속아 그게 진실이고 사실인 듯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닷속에 수영조차 해본 적 없는 내가 견뎌야 했던 파도는 생각 이상으로 높고 깊었다. 무작정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제적으로 군대를 2년이나 다녀와야 했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더 암담했다. 당장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나'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는 한 것인지, 요구하는 자격증들, 자소서에 쓰는 기업이 원하고 바라는 모습의 나를 적어내는 과정을 겪으며 어린 시절 모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호기심 많았던 그 아이를 마음 한구석으로 쫓아낼 수 밖에는 없었다. 실패하면 안 되니까. 실패하면 잘못이고 실수하면 큰일이니까. 실패하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회사에 취직을 하고도 도저히 어렸을 때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던 '왜 공부해야 하는지'와 결이 비슷한 '왜 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느 순간 너무 답답한 마음에 다니는 회사에 대표님께 여쭤본 적 있다.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왔지만, 왜 일해야 하는지 고민을 아무리 해봐도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이다. 어떤 좋은 대답을 해주셨어도 그 당시의 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표님 조차 선뜻 대답을 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도, 군대에 있을 때, 직장에 다닐 때조차 이러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중요해서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가고, 직장에 다니는 것일까. 그 중요한 것은 왜 중요한 걸까. 마음의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의 시점에도 why에 대해서 뾰족하게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없다. 그저 한 가지 알아낸 게 있다면 평생에 걸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과, 그 이유는 시간과 상황이 변한다면 달라질 수 있겠다 싶은 것 정도.


아직도 많이 서툴고, 부족해서 투정 부리고 응석 부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강요하는 모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거나,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철없는 행동을 하느냐고 말한다. 어쩌면 삶은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이게 고통인지 조차 알아채기 어려운 것 같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기 싫은 것들을 참아가며 스스로를 달래 가며 출근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무언가는 얼마나 대단한 걸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참 순탄하지 않다. 적어도 어른이 아닌 채로 20년을 살았으니 그 이상은 더 살아봐야 어른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 이후에는 또 준비되지 않은 채 늙어서 죽음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되는 시기가 올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내가 오롯이 감내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그 어린 시절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 깨끗한 마음과 사물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고 싶다.


삶은 가까이 본다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본다면 희극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늘 당장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음에 스스로 대답을 할 수 없겠지만, 그저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결론이 무엇이다 단정 짓지 않고, 그저 그 과정에 조금 더 몰입해봐야겠다.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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