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남편과 둘렛길을 걷고 있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에다 북한산의 단풍은 절정에 이른 것 같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빛나는 햇살 사이로 낙엽이 휘돌아 떨어졌다.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괜시리 마음까지 두근거렸다. 오랜동안 산행은 꿈도 못꾸도 살았던터라 처음 걷는 숲속 단풍길에 홀딱 반해버렸다.
'와, 단풍 너무 예쁘다.' 분명 고조된 목소리로 말을 건넸음에도 '어, 그러네.' 무심하게 돌아온 남편의 반응에 마음이 상했다. 그 뒤로 몇 번 더 혼잣말을 하듯, 말을 건네듯 가을 단풍 예찬을 늘어놓았지만 어느새 남편은 나를 한참 앞질러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예 먼저 갈 생각은 안 하는지 가끔 멈춰서서 내가 오길 기다리다가, 내가 올 때쯤 '괜찮아?' '물 마셔' 한 두 마디를 하고는 바로 또 걷기 시작하는 거다. 나 방금 도착했다, 1분도 못 쉬었다, 이럴 거면 둘렛길 아래 식당에서 만나는 게 낫지 않냐,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어라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을 뒤쳐지고 혼자 쉬기를 반복하니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고양된 마음은 사라지고, 함께 와서 앞서 걷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나는 둘렛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길 하고팠는데, 남편은 정말 둘렛길을 걸으러 온 게 분명했다. 한 번도 안 가 본 어디 외국 트레일 코스도 아니고 우리 아파트 뒷길로 이어진 동네 둘렛길이었다. 이렇게 안 맞아서야. 다시 같이 오나 봐라.
올봄, 나는 용기를 내 당근에서 발견한 둘렛길 탐방 소모임에 가입했다. 북한산 둘렛길을 중심으로 2주마다 일정이 있는 활발한 동호회였다. 모임장이 국내외 유명 산과 트레일을 모두 다녀온 경력자라고 했다. 우렁찬 목소리와 밝은 에너지를 가진 그녀는 처음 참여한 나같은 초짜 둘렛길러(?)들까지 살뜰히 살피며 산행을 인솔했다. 그 모임에서 나는 안산과 우이령을 다녀왔다. 함께 걷고, 중간에 쉬면서 먹고, 왁자지껄 (정말 걷는 내내 왁자지껄 했다) 수다를 떨었는데 두번째 모임 이후론 조용히 눈팅하는 회원으로 돌아갔다. 열 명 남짓 함께 한 사람들의 걸음도, 수다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산을 내려와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는데 머릿속이 여전히 웅웅거렸다.
그냥 남편이랑 걷는 게 나은 거 같았다. 그날 남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다를 나누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그 아름다운 길을 걷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 생각이 없었을 확률이 높다.) 두번의 모임 참석 후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홀로가 좋은지 두루 함께가 좋은지
이게 무슨일의 영역인지
아니면 누구와의 문제인지
홀로가 아니라면 함께는 몇이 좋은지
둘인지, 셋인지, 아니면 많을 수록 좋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튼.
각자의 속도에 맞춰 걷다가
식당에서 만나는 것도 괜찮겠어.
그때부턴 두루 대화 좀 해보자고ㅡ^^
#혼자여도좋고,같이해도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