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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 Dec 03. 2021

가벼운 식탁으로도 충분하다

52일 채식주의자 4

1년 365일 엄격한 채식 식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채식 지향의 음식을 해 먹으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어 가자.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오래 지속가능한 실천만이 삶을 바꿀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은 <52일 채식주의자>의 두번째 그린데이였다.

월요일에는 엄마가 다녀가셨다. 일이 있어 나갔다가 저녁 전에 들어왔는데 엄마는 이미 가시고 안 계셨다. 애들 보러 오셨겠지 했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안 그래도 내년 되기 전에 한번 싹 치울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 않고, 오신다 해도 살림에 절대 손을 안 대는 분이신데 어쩐 일로 청소를 다 하신 걸까. 눈 뜨고 못 볼 정도였을까. 나는 엄마가 딸네 집에 와서 일하는 걸 바라지 않고, 허락도 않는다. 엄마의  수고는 평생 일하시며 당신 삼남매 키운 걸로 족하다.

엄마가 청소하고 가신 냉장고. 엄마의 수고가 편치 않다.

- 엄마, 왜 벌써 가셨어? 밥이나 같이 먹고 가시지. 냉장고 청소 다 하고 가셨대? 그럴거면 다음부턴 냉장고 열어보지마.

- 된장국 끓여뒀으니까 얼른 저녁 먹어. 된장이 맛있어서 맛있을 거야.


내게 좋은 소리 못 들을 걸 아는 엄마는 딴 말씀만 하신다. 엄마의 수고는 감사하지만 딸들이 엄마의 노동에 기대사는 이상 가사일과 돌봄의 대물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 엄마는 이제 자신만 잘 돌보며 사시면 좋겠다.


The Second Green Day

아침 7시 배송 문자가 온다. 이번 주에도 온라인 장보기다. 대신 지난 주보다 더 간단히 주문을 했다. 이번 주에는 부추 & 호박 전을 해 볼까 한다. 시간이 남으면 콩나물국이나 무침을 하나 더 할 수도 있겠다.

또 손질된 양배추와 부추를 샀다. 소량, 필요한만큼만 사서 쓸 수 있어 좋긴하다.


아이들은 바나나와 귤에 우유를 먹고 등교하고, 그제야 나는 커피 한 잔에 어울릴 아침거리를 찾는다. 뭐가 없다. 왜 항상 뭐가 없을까? 아침 배송을 받고도 먹을 게 없는 미스테리.

엠씨유가 모델이었구나.

야채 호빵이 눈에 띈다. 분명 "야채" 호빵인데 고기가 가득하다. 야채나 피자 호빵이 아침으로 딱인데 오늘은 못 먹겠다. 야채만 들어있는 호빵이 있으면 좋겠다. (이미 있을지도?) 대신 식빵 한 조각을 먹었다. 바나나, 귤, 사과가 있는데도 과일에는 손이 안 간다. 아침엔 조금이라도 탄수화물을 먹어야 공복감이 가시고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다 기분 탓이고, 습관 탓이겠지?


6900원, 이건 정말 추천한다. 싹싹 비웠다.

아이들이 등교하니 점심은 혼자 항상 간단히 먹게 된다. 뭘 먹을까 궁리하다 아침에 배송받은 "비건 콩불고기 샐러드"와 "아보카도 샐러드"가 생각났다. 비건이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대체육이 궁금해서 주문한 샐러드였다. "콩불고기"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이게 6900원인데, 샐러드치고 살짝 비싸지 않나 싶다. 카페도 아니고 마트에서 파는 상품이면 조금 저렴해도 되지 않을까? 뚜껑을 오픈했는데 내용물이 꽤 실해 보인다. 윗칸에는 콩불고기, 버섯, 퀴노아 등이, 아랫 칸에는 신선해 보이는 야채가 담겨 있다. 비건 샐러드 드레싱을 뿌려 먹었는데 맛이 꽤 괜찮다. "콩불고기"도 진짜 고기 같다. 생각보다 질기고, 조금 달았지만 그래도 풀떼기만 먹는 기분이 안 들어서 좋았다. 샐러드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니 충분히 포만감이 느껴졌다. 이건 재구매해서 아이들에게도 맛보여야겠다. 아침에 배송된 샐러드로 해결한 가벼운 점심, 식탁은 자주 이러해도 지 않을까. 노동을 더하지 않은 밥상이 나쁜 건 아니다.


저녁엔 어제 엄마가 해두신 된장찌개에 두부를 넣어 다시 끓이고 부추전과 호박전을 만들었다. 전 양쪽에 있는 김치는 양가 어머님들의 협찬이다. 엄마는 배추김치를 시어머님은 무김치를 보내주셨다. 굳이 해달란 말씀은 안드리지만 주시면 감사히 받는다. 너무 딱 잘라 거절하면 또 정 없다 하신다. 콩나물, 두부면, 감자 등의 재료가 냉장고 속에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했다. 한동안은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는 가벼운 식탁으로 충분하다. 남은 재료는 다른 요일의 식탁에 올라 제 맛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채식주의 & 식단 공부를 시작한다. 시작은 언제나 쉽게 간다. 이번 주에는 "비건"을 읽자!


타이틀 이미지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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