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6 지점에서 되돌아보는 이야기
뉴질랜드에 올 때 가장 큰 금전적 투자는 단연 MBA 학비였다.
학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생활비까지 하면 지난 몇 년간 모아둔 돈을 탕진하는 금액이라 “내돈내산” 유학생활을 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 여섯 학기 중 두 학기를 마치고는 나름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 대부분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MBA의 경우 외국인에 비해 저렴하긴 하지만 내국인에게도 학비가 많이 비싼 편이다. 풀타임으로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돌보고, 추가적으로 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 내 공부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공부 하나만 하면 되는(?) 상태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국인으로 분류된 학생들 중에서도 이민자들이 많아 지내면서 수업 외적으로도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 보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었다. 유학생들이 늘어나 유대감이 생긴 것도 있고 이번에 수강한 과목들에 유난히 조별과제가 많아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조별 발표 준비를 위해 평일 수업 전이나 주말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레 사는 얘기를 곁들이며 가까워졌다. 이를테면, 올 하반기 결혼을 준비한다는 친구에게 "왜 굳이?"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기혼과 돌싱)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조정경기를 했던 리더십 수업에서는 두 팀이 경기를 하던 날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대단한 사람들이 사이에서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혹은 조금 모자란 나를 마주하는 게 괴롭다. 이번학기 마케팅 수업이 특히 그랬다. 첫 주 교수가 정해준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고 나니, 우리 조는 누가 봐도 대단한 사람 여럿이 속해 있었다. 두 번의 팀 발표 중 첫 번째 발표에서 자신이 없던 나는 대본을 거의 그대로 읽는 선택을 했다. 외우려 해도 외워지지 않았고, 무리하다 팀 전체 시간 초과하는 피해를 끼치기 싫었던 나한테는 차선책이었다. 우리 팀원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속이 편했다.
두 번째 발표를 앞두고는 가까스로 대본을 다 외우는 데 성공했다. 단순 암기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반복하니 되긴 됐다.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약간 늘어나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더니 속이 시원했다. 원래도 잘했던 팀원들은 두 번째 발표 후 나에게 많이 성장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다음 학기는 조금 더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