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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학생 Jul 21. 2023

Term 3: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25 뉴질랜드에서 인간관계

뉴질랜드에서도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남편의 직장이자 우리 플랫은 논외로 하더라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점차 사람들이랑 엮이는 일이 잦아졌다. MBA 세 번째 학기를 시작한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학교에서 가장 자주 보는 반 친구들은 주로 수업시간 전후로 만나 서로 사는 얘기나 과제 얘기를 하게 된다. 그중 K의 경우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이나마 쓸 수 있으니 둘이 얘기할 때는 영어에 각자 언어를 포함해 세 언어를 섞어 쓰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K는 기술직군 출신이라 MBA 내용이 생소하다고 하지만 항상 성실하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다. 그 외에 다른 친구 대부분은 학교에서만 보지만 만나면 포옹하면서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 몇이 있다.


텀 브레이크 중에는 “손절” 당한 일도 있었다. 꽤 가깝게 지내던 한 사람은 지난 학기 초반부터 갑자기 불편한 티를 내더니 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내 인스타그램을 언팔로우했다. 30대 중반에 어릴 적 친구 고민을 하는 기분이라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던 사이가 뚝 끊기니 헛헛하다고 해야 할까. 좁은 곳이라 결국 다른 수업에서 만났다.


지난 학기 C, 그리고 J와 친해졌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나이대의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여자 셋이 모여서 수다 떨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뉴질랜드에 오래 머무를 예정이라는 얘기에 너무 반가웠다. 학교 과정이 끝나도 종종 만나서 시간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생긴 느낌이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의 언니들이 떠오르는 조합이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 과제를 위해 그룹을 짜는데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지난 학기 나를 힘들게 했던 P도 피하고 싶고, 이왕이면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하고 싶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수업 끝나고 나가는 데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 몇몇이 그룹을 정했는지 물어왔다. ‘지금 물어보는 건 이 사람들이 한 조를 할 생각인데, 나도 끼워준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럴 때는 빠른 반응이 필요하다.


“나 너네랑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수업 시간 다른 활동을 할 때 자기주장이 강하던 사람이 하나 있어 조금 불편하다 싶었는데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흔히 서양사람들은 직설적으로 좋고 싫음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내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를 들면, 누군가 불편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행동을 지적하거나 그 사람을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는 대신 거리를 둔다. 지난 학기 P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피드백이 오간 건 동료평가가 유일했다. 그 외 P가 단톡방에 올리는 쓸데없는 질문에 답이 점점 없어졌을 뿐. “싫다”는걸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신뢰’가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구직시장뿐 아니라 집을 렌트할 때도 나를 보증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믿는 누군가가 추천한 사람이라면 우선순위로 둔다. 이번에는 소소한 그룹편성이었지만 아는 친구 몇몇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랑 지난 학기 수업 같이 했다는 ‘보증’을 하며 영입해 줬으니 고마울 따름.


MBA에서 관계 맺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다양한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어도 내 영어가 짧은 게 크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곧잘 구사하지만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표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 영어는 짧아도 핸드폰에 메모해 가며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다니니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한편으로 계륵 같은 존재가 된 내 정체성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져 이제 수업에 절반 정도는 외국인이 차지하는 것 같다. 그룹 과제를 주는 입장에서도 팀을 꾸리는 입장에서도 적절히 외국인들이 섞일 수 있게 신경을 쓴다. 난 이럴 때 깍두기로 딸려 가는 존재가 된 느낌. 지난 학기에 조별 과제가 많아 괴로워했는데, 그 사람들을 새로운 학기 수업에서 만나니 그래도 ‘믿음직한’ 사람으로 인식되다니 다행이다.


가끔 인간관계가 버거운 날에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전화를 한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해도 괜찮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주니 마음이 편해진다. 살면서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해지는 날이 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 열고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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