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도둑맞은 집중력
난 유혹에 꽤나 약한 사람이다. 드라마나 스도쿠에 빠지면 몇 시간은 금방 지나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먹을 때면 자연스레 술을 찾는 중독의 일종인 것 같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구나 싶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인스타그램 계정 비활성화. 인스타그램이야 다들 이쁘고 좋은 걸 올린다지만 내 지인들 사진에 끊임없이 하트를 누르다가 현타가 왔다. 몸은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내 머리는 여전히 한국을 못 벗어나고 있는 느낌. 계정 비활성화를 한 상태에서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을 누르면 로그인 창이 뜬다. 이 로그인 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며, 얼마큼 습관적으로 내가 누르고 있었나 싶다.
짧은 텀 방학을 즐기고 학기를 시작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몸과 머리는 공부로 돌아가지를 못해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건 두 시간이나 될까, 그 외 시간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혹은 최근 시작한 브런치에 내가 썼던 글을 고치면서 보냈다.
이런 내 마음을 알고리즘이 읽은 건지 애플리케이션에서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 추천이 떴다. 책 한 권 받겠다고 비싼 우체국 EMS를 받을 수도 없고, 어차피 공부도 안되는데 영어로 책이나 읽자 싶어 원본인 <Stolen Focus>를 서점에서 사 왔다. 이제 겨우 다섯 챕터 읽었을 뿐인데 작가가 내 맘을 꿰뚫어 본 기분이다. 내가 요즘 고민하던 스마트폰 중독과 책상에 앉아도 딴생각 가득한 집중력, 수면장애까지. 내가 이상 범주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럼 날 어떻게 갱생해야 하나 걱정이다. 남은 챕터를 읽으면서 작가가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
MBA 수업은 보통 첫 세 주는 과목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넷째 주부터 본격 과제 시즌, 이제는 정말 할 일을 해야 할 때다. 일반적인 집중력은 떨어져 있어도 마감기한이 가까워질 때 생산성이 높아지는 내 루틴을 찾아와야 할 때가 되었다.
결국 미룰 수 있는 최대로 미루다가 다섯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과제 두 개 기한이 왔다. 하나는 이틀 전 95%쯤 완성시켜 두고 나머지 하나는 절반정도 해두었나 했는데, 전날 집중해서 하려고 열어보니 내가 건드린 건 절반이 아닌 20% 남짓이었다. 누굴 탓하겠나, 결국 밤을 꼴딱 새워서 과제를 해냈다. 이럴까 봐 조금이라도 미리 하고 싶었는데 과거의 내가 밉다.
지난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 MBA까지 다니면서 알게 되는 건 난 꾸역꾸역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거다. 퀄리티는 떨어질지언정 목표지점에는 결국 닿는다. 일주일 남짓한 인스타그램 비활성화는 핸드폰을 덜 들여다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MBA는 집중력을 잃고 표류하는 중이지만 결국 모든 과제를 제출하고 졸업까지 갈 거라 믿는다.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는 건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