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뉴질랜드 MBA의 반환점을 돌았다.
정신 차려보니 벌써 절반을 지나왔다. 시간 빠르다.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는 만큼 권태로웠던 시기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하고 싶은 마음과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나를 뒤흔드는 시간이었다. 집중력을 핑계로 9주 중 과제기간을 준비하는 삼 주 정도만 불태우며 보냈고, 이제 일주일 쉬어 가며 다음 텀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번 텀에도 세 과목을 들었다. 다양성과 포용은 과목도 어려웠고 담당 교수와의 소통도 쉽지 않았다. 결국 원치 않은 결과를 받았고 재고(reconsideration)를 두고 고민하다가 입씨름이 싫어 그냥 받아들였다.
리더십 수업은 시작점에서 가장 물음표였지만 “나”를 찾아 다녀온 여정이었다. 의문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수업을 리더십을 전공하지 않은 프로그램 디렉터가 가르친다는 데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는 오히려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 온다는 게 인상적이기도 했고, 본인이 전문가가 아님을 인지하고 필요할 때 전문가 특강을 준비한 덕에 그동안 MBA에서 들은 수업 중 기억에 깊이 남을 수업이 되었다.
마지막 과제 준비를 앞두고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전부터 반복되어 온 문제로 나의 생각을 반영해야 하는 reflection에서 계속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 이 과정에서 가장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답변을 받았다. “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인데, 그게 지금은 부족한 것 같다고. 학교에서 수 십 년을 일했으니 동아시아 학생들도 많이 대했을 교수는 분명하면서도 따뜻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우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테스트 툴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함께 살펴보면 좋을 책자를 빌려주었다. 교수와 면담 후 마지막 과제에 충동적으로 브런치에 내 글을 쓰고 있다고도 고백을 했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언어에 위축된 나를 위한 치료, 한국어로 내 감정과 일상 기록하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챙기기 위한 처방이었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늘 벽이 느껴지는 건, 지난 나의 회사생활에서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을 한다. 내 주변에 좋은 선배와 동료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리더들도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긴 했어도 남을 잘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이 과목을 들으면서, 어느 자리에 오른다는 책임감보다는 내 인생을 잘 책임지는 것도 리더십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지막 과목은 다음 학기부터 시작될 프로젝트를 앞두고, 전략적인 접근법을 알려주는 과목이었다. 학기 초 조 편성에서 눈치싸움이 심했던 그 과목. 어려울 것이라 지레짐작 겁을 먹었었는데, 컨설팅이라는 분야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흥미를 느꼈다. 조별과제도 모범적인 발표였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별과제를 하며 또 한 번 필요한 건 눈치구나 싶었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 살아남으려면 말을 해야 하는 이곳에서 난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단톡방을 만들고 미팅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언제까지 무얼 하라고 팀원들을 쪼으는 역할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총대를 멘 시작이었는데, 의외로 조원들이 잘 따라오면서 콘텐츠를 채워 나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
다음 학기부터는 두 학기 동안 스스로 프로젝트 주제를 정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뉴질랜드에 있는 사업체의 컨설턴트가 되어 문제점을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한 후 리포트를 작성하는 과정으로, 해당 사업체와 정보 교환을 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네덜란드에서 MBA 하는 친구는 논문을 쓴다고 했는데, 학교마다 졸업기준이 다른 걸 또 알게 되었다. 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어떻게든 된다는 걸 배웠으니, 프로젝트도 어떻게든 해 나갈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