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계획 싱가포르-태국 여행기
6월 18일 토요일, 우리는 에어뉴질랜드를 타고 뉴질랜드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티웨이 항공을 타고 싱가포르로 향했다.
남편이 스무 살에 기흉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어 비자발급을 위해 관련 서류를 미리 챙겨 두었었다. 갑자기 국경을 열며 업무가 몰린 이민성이 추가서류를 냈는데도 출발 전날 업무시간까지 결국 비자를 내어주지 않았다. 출발 전날 풀이 죽어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부모님 집에 우울한 마음으로 있기 싫어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았다.
바로 다음날 출발하는 싱가포르행 항공권이 두 명 편도로 50만 원을 넘지 않았고 방콕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마일리지 항공권이 있으니 싱가포르-방콕 사이는 저비용항공권으로 메울 수 있다. 마침 두 나라 모두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해 급하게 3주 정도 계획이 세워졌다.
양쪽 집에는 뉴질랜드는 못 가지만 해외는 나간다고 알리고 짐가방을 다시 챙겼다. 위탁 수화물이 없는 저렴한 티켓이라 짐을 최소화해서 얇은 여름옷에 상비약으로 각자 배낭 하나씩 꾸렸다. 싱가포르에 가자고 했을 때 남편은 설마 하더니 표를 끊고 짐을 챙기는 나를 보며 이렇게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구나 했단다.
오래전부터 뉴질랜드에 가기 전 다른 나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싶던 로망이 있었으니 나쁘지 않다며 서로 달랬다. 가까운 친구들한테 상황을 알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지인들에게 내일 싱가포르에 간다고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각자 8킬로, 9킬로 배낭을 메고 오랜만에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와인 한잔 하며 오늘 결국 공항에 왔다는 농담을 했다. 저렴한 항공권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새벽 두 시 싱가포르 도착. 3년 반 전 여행 겸 사전답사로 뉴질랜드에 다녀올 때 싱가포르에서 환승하며 노숙을 해봤던 지라 이번에도 공항 노숙을 하기로 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 있는 고객센터 소파에 자리를 잡고 번갈아 눈을 붙였다. 일곱 시쯤까지 자다가 출근하는 직원이 쫓아내는 통에 짐을 챙겨 시내로 향했다.
월요일 싱가포르 메트로를 타고 가던 중 남편의 비자 메일이 왔다.
Congratulations! We have approved your application for a Korea Working Holiday Scheme work visa.
근무일 기준 하루만 일찍 줬으면 우리가 지금 싱가포르가 아닌 뉴질랜드에 있었을 텐데, 차라리 아예 늦게 줬으면 이렇게 화는 안 났을 텐데. 비자 승인은 났어도 이미 여행을 시작했으니 3주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똑같다. 성격 상 내가 더 예민하고 꼼꼼하니 같이 집을 구하려던 거였는데, 이렇게 된 김에 남편이 내 비자 일정에 맞춰 같이 가거나 남편이 먼저 뉴질랜드에 가서 혼자 집을 구하거나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 예산대비 물가가 비싼 싱가포르에서는 급하게 잡은 창문 없는 호텔에 묵었다. 나흘동안 추천받은 카페 몇 군데를 가고 갑자기 싱가포르에 나타난 우리를 위해 시간 내어준 지인들을 만나고 푸껫으로 넘어갔다.
우기지만 대낮에 스콜 말고는 맑은 하늘에 물가도 저렴하고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싱가포르 호텔 가격의 절반인데 5성급 수영장 딸린 리조트라니, 이번 여행에서는 3n년 동안 못해온 수영을 배워 물에 뜰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푸껫 빠통의 리조트에서 남은 2주 남짓의 여행 방향을 정했다. 남편은 한 군데 머무르며 그 동네에서 살아보기를 바랐고, 난 어디가 좋을지 모르니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결국 살면서 우리가 언제 태국을 다시 올지 모르니 체력 닿을 때 여러 군데 돌아다니자고 남편을 설득해 냈다.
푸껫에서 피피섬으로 가는 날 뉴질랜드에 있는 지인한테서 남편에게 같이 일할 생각이 있냐는 메시지가 왔다. 어차피 뉴질랜드에 가서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먼저 제안을 받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피피섬에 들어가는 보트에서 약한 인터넷 신호와 씨름하며 남편 혼자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비수기의 여행에서는 바로 출발하는 교통편이나 뒤늦게 괜찮은 숙소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여행객이라는 게 제일 좋다. 싱가포르에서 푸껫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피피섬을 보고 가야겠다 결정하고 전용 해변을 끼고 있는 숙소를 저렴하게 예약했다. 피피섬은 영화 속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하얀 모래와 맑은 물속을 수영하는 물고기 떼, 가끔 먹이를 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원숭이 무리까지.
호텔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 전용 해변에서 신나게 놀다가, 스콜이 내리면 오두막에서 마사지를 받고, 출출해지면 바로 옆 카페테리아에서 파니니를 먹었다. 겨울의 포르투갈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에게 피피섬이 또 다른 신혼여행처럼 느껴졌다. 피피섬을 떠나 라일레에서 이틀, 끄라비타운에서 이틀을 보내고 수도 방콕으로 갔다.
남편은 뉴질랜드에 가서 바로 일 할 생각을 하니 커피에 대한 부담이 생기나 보다. 방콕에 몇몇 카페를 찾아다니며, 태국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 커피를 맛보았다. 주요 커피산지 하면 아프리카나 중남미를 떠올리는데 태국 북부가 떠오르는 커피 산지라고 한다. 한 카페에서 친절한 매니저 분이 여러 가지 커피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품절된 커피를 맛보라며 따로 담아주었다.
다른 관광지는 제쳐두었지만 태국에서 절 한 군데는 가보고 싶어 왓포를 찾았다. 거대한 와불을 보며 우리의 앞날이 조금은 밝았으면 하는 소원을 빌었다.
마지막 날 오후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조금 거친 코로나 검사를 하고 A380 2층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