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내가 사는 법

by 시원시원



© katekerdi, 출처 Unsplash


2019년 12월 코로나의 등장에 사람들은 신종플루나 메르스처럼 잠시 스쳐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에도 곧 끝날 것 같은 코로나는 2020년 10월 코로나의 새로운 변이인 델타 변이로 인해 다시금 확산세를 겪었다. 세계 각국은 델타 변이로 경제와 사회 전반의 겪리가 강화되었다. 2021년이 들어서면서 델타 변이는 기존 변이의 우세종이 되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백신이 나오고 확산 세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코로나의 감염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은 점차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방역 패스가 등장하고 이동제한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추어 방역 조건을 완화하였다. 사람들은 멀지 않아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다.


2021년 11월에 남아공에서는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였다. 코로나는 델타 변이에서 오미크론으로 변이를 하였고 지금의 확산세에 오미크론이 가세하였다. 그러자 세계 각국은 코로나의 감염자들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다시 코로나에 대한 방역을 강화시켰으며 오미크론이 발생한 나라는 입국은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미 오미크론은 델타 변이처럼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도 100명의 오미크론 환자가 발생되었다. 머지않아 델타 변이는 사라지고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2차 백신 완료자가 80% 이상인데도 확산세가 증가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2차 백식 패스에서 3차 백신 패스로 강화시키고 사회적 거리 두리도 역대 최대로 강화시켰다.


자영업자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매출 감소와 대출이자부담까지 힘들어하고 있다. 식당과 카페는 4인까지 2차 이상 백신 완료자만 이용이 가능하며 미접종자나 1차 백 신접 종자는 혼자만 가능하다. 영업시간도 9시간까지 줄었다. 거리는 추운 겨울처럼 스산해졌다.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나는 자영업자다. 식당이나 카페처럼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지 않음에도 점점 위기가 누적되어 불안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오미크론이 발견되었지만 또 다른 우세종 변이가 나올지 모른다. 아니 나올 것이다. 코로나의 변이는 1년 주기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는 2024년까지 코로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망을 하였다.


2002년 대한 미국이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날 나는 용인 수지에 열쇠점을 오픈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나는 열쇠 도매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 수지에서 제일 큰 매장이었다. 회사도 다니지 않았던 내가 아버지가 하셨던 일은 어깨 넘어 보고 시작했기에 초반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초보티가 보이자 몇몇 사람들은 중고를 가져와 여기서 산거라며 새것과 교환해 가기도 했다. 제품 가격을 제대로 알지 못해 들어온 가격보다 싸게 판 적도 많았다. 하지만 더 큰일은 성격이었다. 낯을 많이 가렸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가계를 오픈한다는 것은 모든 자영업자의 희망이다. 매장이 사람들로 넘쳐나길 바라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나 역시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런 희망은 없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보고 있기를 매일 반복했다. 하루 매출이 6000원 일 때도 있었다. 한 달 남짓 지나자 심적 고통에 위경련을 일으켰다. 내 몸안의 모든 장기가 서로 뒤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난생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응급실을 수시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만두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석 달이 지나자 초보티가 사라졌다. 손님과 열쇠 사장님을 대하는 방법이 제법 능숙해졌다. 초보때 사기 치던 사람들은 더 이상 내 능숙함에 속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화를 내지는 못했다. 일이 능숙해지자 나를 괴롭혔던 위경련도 잦아들었다.


2002년 당시 열쇠업은 디지털 도어록이 나오기 시작했던 해이다. 그래서 당시 가격이 100만이 넘는 것도 있었다. 제일 싼 가격이 20~30만 원 정도 했기에 아주 드물게 팔렸다. 이때부터 열쇠업은 기존 소규모에서 규모가 제법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다른 직종보다 소자본으로 개업을 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는 500만 원 미만으로 개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디지털 도어록이 보편화되면서 열쇠업은 규모가 커져갔고 지금은 열쇠를 쓰는 사람이 보기 힘들 정도로 거의 대부분 디지털 도어록을 쓰고 있다.


2007년 리먼 파산으로 인해 전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대규모 실업자가 생기고 경제는 IMF의 시절로 돌아갔다.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직업상 열쇠업은 그다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대규모 실업자로 인해 소자본으로 창업을 할 수 있는 열쇠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매업을 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한 번에 많은 물건을 납품하기 바빴다. 돈도 제법 벌기 시작했다. 딱 그때 까지였다.


사실 열쇠업은 2001년 디지털 도어록이 나오면서부터 쇠퇴의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사철이 되면 전에 살던 사람이 쓰는 열쇠를 바꾼다. 게다가 사람들이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잃어버려 똑같은 키로 복사를 하거나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한다. 비록 디지털 도어록보다 저렴하지만 그만큼 일이 많이 발생한다. 그만큼 일의 빈도수가 많아 출장일이 많이 진다. 하지만 요즘은 이사를 하면 기존에 쓰는 사람의 디지털 도어록에 번호만 바꾸면 되고 열쇠가 없어 잃어버릴 일도 없다. 디지털 도어록 특성상 고장 나야지 출장일이 생겨 이전보다 확 줄어든 출장일에 열쇠업을 하는 사람들의 가격경쟁이 심화되었다. 게다가 2007년 리먼 파산으로 열쇠 창업이 늘어난 것도 한몫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도매업이 타격을 받는 것이 있다. 바로 온라인으로 판매로 인한 타격이었다. 나 역시 도매업을 하면서 제일 큰 타격은 온라인 판매였다. 가격은 그대로 노출되었고 심지어 내가 산 가격보다 온라인에서는 더 싸게 파는 일도 종종 발생되었다. 그로 인해 100만 원을 팔면 5만 원이 남는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박리 다 메였다. 싸게 팔면 사라들이 많아질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경쟁이 붙어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 들어온 가격에 파는 매장까지 생겨났다. 더 이상 매장 안에서 판매만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시대에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되돌릴 수 없기에 매장 안에서 판매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소매로 돌아서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존 거래처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도매가 소매를 하면 욕을 먹는 시절이기에 소매 손님이 들어오면 설치 건은 거래처 사장님에게 돌렸다. 거래처를 돌며 사정을 상세히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며 도와달라고 하였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이해를 해주었다. 그중 친한 사장님들에게 열쇠 기술을 배웠다. 15년 열쇠업을 하던 나는 다시 초보 열쇠업자가 되었다.


4년이 더 흐르고 2019년에 갑자기 찾아온 어른의 사춘기에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 당시 매출은 도매업을 하기 전보다 증가하고 있었다. 자영업자 대부분은 쉬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어느 매장에 문 닫는 기간이 일주일이 넘는다면 대부분은 폐업이나 업종변경일 것이다. 내 주위의 자영업 사장님들을 보면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그마저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장님도 있다. 나 역시 일요일만 쉬고 대부분의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은 일을 한다. 그래서일까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어른의 사춘기가 찾아와서야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 동네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 현관을 나가는 것부터 해서 10분, 20분, 30분으로 시간을 점점 늘려나갔다. 산행을 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는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잡념은 걱정을 낳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다. 그러자 평소에 안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돌 모양, 나무 모양, 벌레, 나뭇잎의 각각의 형태가 들어왔다. 새벽 산행만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자고 시작한 것이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새벽 산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늦게 자는 버릇이 고쳐진다. 평소에 자는 시간이 줄어들면 피곤하기에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아침에 산행을 하면 마음의 빈 공간이 생긴다.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채우는 연습을 한다. 모든 공간은 비워야 채울 수 있는데 사람의 하루의 공간 중에는 아침이 그러하다. 잠을 들면서 버리고 아침에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2020년이 되고 코로나가 전 세계를 잠식했다. 그러자 서점에는 코로나 시대에 대한 예측 서적들로 넘쳐났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불안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 불안은 나에게도 왔다. 이대로 계속 열쇠업을 하면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의 고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