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언 그 위대한 질문 100일
의식해야 자책하지 않는다
요즘들어 어둠은 빨리 사라지고 있다. 새벽 5시, 아직은 어두운 하늘이다. 하지만 한 달 뒤에는 밝은 하늘이 될 것이다. 작심삼일을 벗어나 일주일이 된 월요일 새벽, 매장에 도착 후 피트니스로 바로 향했다. 어제의 휴식으로 오늘 운동은 만족스러웠다. 휴식 근육들이 다시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거울에 포즈를 취하고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휴식 후 의식하지 않으면 루틴은 쉽지 않다. 항상 의식을 하고 있어야 해야 할 습관을 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출발할 때 운동을 떠올린다. 피트니스 가서 오늘은 어떤 운동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운동이 끝나면 바로 글쓰기를 생각한다. 어제 어떤 일이 나에게 있었으며 그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깨우쳤는가? 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야만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오늘부터 경제 신문을 읽겠노라 결심했다. 그 결심에 매장 근처 편의점 7군데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신문을 파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30분의 시간을 허비하고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른 곳에 찾아가 신문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내일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신문을 살 것인가?
확언 질문
"나는 왜 새로운 습관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의식하고 있어서다"
확언 질문을 하니 신문을 찾으러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다. 계속 찾다간 하루의 균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 매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책을 펼쳤다. 오늘은 "보도 섀퍼의 돈'이란 책이다.
보도 섀퍼
"돈은 언제난 우리가 부여하는 만큼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돈 문제로 곤란을 겪는 동안 돈은 필요 이상 중요한 것이 돼버립니다. 금방 좋아질 거라 단순히 희망하고 믿기만 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희망은 정신적인 안정제이며, 아주 지능적인 자기기만입니다"
시원시원
"돈 그릇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돈을 받아들이는 크기를 말하는 겁니다. 돈의 귀함으로 모르면 돈 그릇에 구멍이 생겨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죠. 돈을 주머니에 꾸겨 넣고 다니거나 집안 여기저기 아무 곳이나 넣어둔다면 돈 그릇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도 섀퍼
"가치와 목표가 일치하지 않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곧 우리에게 구체적인 행동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무언가 시도하는 사람은 실제론 변화를 피할 구실만 찾는 사람에 불가합니다. 변화가 좋은 것이고 변화를 일구어낼 능력이 자신에게 충분하게 확고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구실만 찾는 것입니다."
시원시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삶에 있어 원하는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진정 변화는 삶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모여서 삶은 조금씩 변화되기에 무작정의 시도는 금세 지쳐버릴지 모릅니다. '남들이 해서,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고 절실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보도 섀퍼
"낙관주의는 얼토당토않게 자주 자신감과 혼동됩니다. 낙관 주위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도록 하는 반면, 자신감은 그 어두운 면까지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그러나 오직 낙관 주위만 있고, 다른 속성들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 낙관주의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반면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과거 경험을 토대로 '나는 문제없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시원시원
낙관주의는 생각만으로 그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다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니깐, 내가 참는다"라며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리고 "난 괜찮다"라고 자기 최면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상대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그것에 화를 내고 걱정하며 후회를 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내 희생이고 그 순간만을 벗어나기 위한 얇은 수에 불가합니다"
오늘 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에 일전 화가 들어와 아는 사장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제 네가 준 일로 가만히 한 건 했다". 그 말이 전부였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야 괜찮았습니다. 평소 그를 잘 알아 신경 쓸 일은 아니었거든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어제 설치했던 것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잘 안된다며 저에게 와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가기 싫었지만 오래된 인연 탓에 갔습니다. 천천히 살펴보니 설치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치가 조금 잘못된 것 같다 말했습니다. 그가 화를 내더군요.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일 없었다면서 물건이 불량이라 했습니다. 다시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에 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류가 발생한 그대로의 설치는 할 수 없어 설명서에 맞게 했습니다.
여기서 일단락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다음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매장에 있는데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물건이 불량한 거고 자신의 설치는 제대로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설명서에는 분명히 나와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처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해결방법은 하나였습니다. 그는 주장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전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이 더 문제였습니다. 제가 설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득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 발로 거기에 찾아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에 갔던 것이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게 제 하소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욕해달라 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로 화가 풀린 것 같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무언가 남아있는 감정에 하루가 엉망이 된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감정을 무시한 채 가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에게 설치 잘못을 말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그에게 '당신이 와달라고 해서 온 겁니다.'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네 번째,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문제의 인식 없이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려 한다면 감정에 휘말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언 질문
"나는 왜? 감정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가?"
"문제를 인식하고 내 감정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문제를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는다."
"나는 감정을 잘 다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