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나는 게으름쟁이였다. 밤 12시까지 TV를 보고 7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운동은 숨쉬기와 의자에 앉기 그리고 몇백조 걷는 게 전부였다. 다행히 술, 담배는 취미가 없었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살은 찌찌 않았다. 다만 근육은 점점 줄어들고 지방에 되어 차곡차곡 배에 쌓여갔다. 간혹 아내가 산책을 권유하면 '해볼까'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한 번은 마음을 크게 먹고 산책 결심을 했다. 다행히도 겨울이고 새해도 얼마 안 남아 봄에 하기로 이루었다. 나는 '봄'을 기다렸고 3년 전까지 그 봄은 오지 않았다. 산책이 습관으로 만들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게으름뱅이였다.
나는 3년 동안 독서와 글을 썼다. 첫해에는 100권의 독서와 300여 개의 글을 썼다. 두 해에는 50권의 독서와 약 100여 개의 글을 썼다. 작년에는 50권의 독서와 약 30개의 글을 썼다. 독서와 글은 점점 실행에서 생각으로 변환되고 있었다.
생각이 실행에 앞서 필요한 건 그 생각을 자주 떠올려야 한다. 계속 되뇌어서 나에게 최면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떠올릴 수 없다. 이미 나에게는 다른 생각들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강제성이 필요했다. 생각이 눈으로 보이게 하는 그 방법은 노트에 100번 쓰기였다. 그날 저녁 나는 '2023년 책을 출간하여 월 천만 원을 벌었다. 감사해'라는 목표를 140번을 썼다.
첫째 날 140번 목표 쓰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팔목이 너무'아프다'였다. 점점 글씨는 불어가 되고, 120번을 넘기면서는 나도 알아볼 수 없는 외계어가 되어있었다. 둘째 날에도 팔목은 여전히 아팠다. 글씨를 휘날리게 쓰는대도 60분이 넘게 걸렸다. 이것을 100일 동안해야 된다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셋째 날에도 글씨 쓰는 근육이 자리가 잡히지 않아서 여전히 팔목은 아팠다. 한 번에 140번을 쓸려니 시간도 많이 걸려 쓰는 내내 하기 싫은 마음이 계속 생각났다. 역시 작심삼일이었다.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포기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더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번에 다 쓰는 것보다 새벽에 70번을 쓰고 자기 전 70번을 쓰는 방법으로 바꿨다. 두 번 나 누워서 쓰면 시간도 부담 없고 무엇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의 목표를 암시하고, 자기 전 나의 목표를 암시하면 그전보다 독서와 글쓰기를 실행하기가 쉬어질 것 같았다. 그 방법으로 쓴 지 열흘째가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한결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같은 양의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도 단축되었다. 이런 게 최면의 효과인가 보다. 생각을 글로 쓰니 명료해져 아무 방해 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생각이 실행에 앞서 필요한 건 그 생각을 자주 떠올려야 한다. 계속 되뇌어서 나에게 최면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떠올릴 수 없다. 이미 우리에게는 다른 생각들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생각이 눈으로 보이게 하는 것. 그 방법이 우리가 잘 아는 노트에 100번 적는 것이다. 당연히 몇십 번 적어서는 효과는 없다. 왜 100번 쓰기 인가? 많은 책에서 언급한 100번 쓰기는 최소 이 정도는 써야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최소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