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독서 토론을 한다.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듣다 보면 가족이라도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는 딸아이의 하나의 물음에 가족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딸아이는 플라톤이 추구하는 올바름이 성찰 그리고 정의와 행복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며 그 시대에 올바름이 지금의 올바름과의 차이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시대 그 시절의 올바름과 지금의 올바름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구가 다 아는 사회의 규범에 따른 것에 한정해 나온 올바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올바르다 - 말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이치나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올바름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10여 분 후 아내가 말했다.
"아빠가 먼저 올바름에 대해 말해봐"
나는 아직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으나 토론의 시간이 길어져 지루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떠올린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올바름이란 나에 대한 후회가 아닐까?"
"사회의 규범보다 올바름은 어쩌면 개인의 품행이나 습관 같은 거잖아"
"그러니 개인적인 나의 올바름은 일상의 후회 없는 어떤 것들이 아닐까 싶어"
나의 말에 아내가 이어 말했다.
"나는 아빠말에 거의 비슷한데"
"나의 올바름이란 나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 습관 행동들 그리고 생각이 나를 위해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머물지 말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서 나를 단련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올바른 내가 되지 않을까"
아내의 말이 끝나자 나의 생각과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의 차이는 올바름의 긍정의 말에 나는 부정적인 후회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내는 긍정인 자신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같은 맥락의 말이지만 서로 생각의 관점의 출발선이 달랐다.
이어 딸아이가 자신의 올바름에 대해 말했다.
"나는 아빠가 말한 후회는 아니고 약간의 찝찝함이라고 할까?"
"후회를 떠올린다는 것은 나를 자책하거나 실망하는 거라서 나는 싫은데.."
"그래서 후회보다는 찝찝함이 더 나를 바꾸기 쉬운 생각이 들어"
"나의 올바름이란 약간의 모난 돌이라고 할까?"
"다듬어질수록 이쁜 돌모양이 될 수 있잖아"
그래,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올바름은 그런 것이겠지. 나와 아내는 딸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리 가족의 올바름에 대한 생각은 나의 후회와 아내의 아름다움 그리고 딸아이의 모난 돌로 토론을 끝마쳤다.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든 무엇을 얻든 현재의 적당함 보다는 미래의 부족함을 위해 산다. 제아무리 부자라도 걱정과 근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올바름은 미래의 부족보다는 현재의 적당함에 감사한 마음이 아닐까?
후회나 아름다움 그리고 찝찝함은 다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