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아침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까지 세찬 날이다. 내 머리 위로는 바람의 아우성에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옷깃을 여밀었다. 2023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올해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자영업자의 운명이란 매달 아니 매일이 전쟁이다. 어떤 날은 안도, 어떤 날은 불안, 또 어떤 날은 기쁨인 것처럼 수많은 감정이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라는 드라마에서 본 조울증과 같았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만약 당신이 우울하다면 당신은 과거에 살고
만약 당신이 불안하다면 당신은 미래에 살고
만약 당신이 평온하다면 현재에 사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보자면 자영업자는 과거 미래 현재가 공존하는 삶인가 보다. 그런 이유가 내가 살아온 나날 보다 살 날이 점점 적어지는 이 상황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이제 그만 타인의 위한 삶을 청산하고 싶은 때가 온 것 같다.
옆 매장에 보름이란 말티푸 강아지가 있다. 가끔 보러 가면 보름이는 날 무척 반겨준다. 주인인 사장보다도 더 반겨준다. 아마도 보름이 눈에는 나만 보이나 보다. 매장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울타리에 조그마한 앞발을 내밀며 자신을 만져달라고 나에게 신호를 준다. 그러면 나는 손을 내민다. 보름이는 너무 신이 나 내 손을 장난감인 양 물고 핥는다.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나는 살면서 있었을까? 아마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타인을 위해 사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겠지..
얼마 전 대학교 친구들 모임방에 메시지가 왔다. 올해도 끝자락을 달려가고 있으니 송년회 모임일 것이다. 모임 주체자인 한 친구가 날짜와 장소를 서너 개를 보냈다. 나는 그중에서 선택해야 했는데 가급적이면 집과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사실 자영업자라 날짜와 장소에 구애받지는 않았다. 반면 2년 전 창업한 친구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시간과 장소가 마땅치 않아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23년째 자영업자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때는 나도 영업시간을 칼같이 지킨 적이 있었다. 그 친구말에 빌리자면 영업시간은 손님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의 몇 가지는 타인보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우리는 작은 부족이 큰 만족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삶의 불안은 점점 더 나를 타인을 위해 살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만 바라보며 세월이 흐른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이 나를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이미 나는 늙고 쇠할것이다. 그때 되돌아오는 건 자기 자신이 불쾌한 존재라는 것과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나 자신에게 자신의 삶을 찾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삶을 산다는 것은 수많은 경험을 하고 삶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삶을 만들 것인지 나의 삶을 만들 것인지는 지금 내가 하는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