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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Dec 19. 2023

창업

자영업 생존기

창업


나의 아버지는 열쇠도매상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그리고 70을 바라보는 나이인 6년 전에 은퇴를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학창 시절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 직업란에 아버지의 직업은 상업이었다. 그랬던 나였다.


직업에 귀천이 있던 시절 아버지의 그 시절에는 열쇠업이라고 하면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지금도 열쇠공으로 불리지만 그때의 흔한 말로는 쇳대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쇳대란 쇠를 만지는 사람을 아주 낮게 불리는 말이다. 지금은 열쇠기계가 있어 쉽게 복사가 가능하지만 아버지 시절에는 줄(야스리)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직접 홈을 팠다. 그래서 쇳대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23년 동안 열쇠업을 하면서 딱 한번 들었다. 그것도 일용직 노동자에게서 말이다.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자세한 건 다음에 하기로 하자. 그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열쇠업이 많이 발전되었지만 열쇠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내가 열쇠를 창업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컸으나 당시 나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 한 번은 단위농협에 채용공고가 났었다. 지금은 들어가기 힘든 곳이지만 23년 전에는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내 전공이 수학과 전산이라서 서류 면접은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그 당시연봉이 1300만 원 정도였다. 내가 삼계탕을 파는 음식점에서 배달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월급이 80만 원이었는데, 은행원 치고는 월급이 작다고 생각이 들어 취업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나는 사회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에게 열쇠업을 권했다. 나는 남대문 매장에서 사촌형에게 열쇠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수님 친구 제약회사 면접을 보았다. 물론 잘 되진 않았다. 그리고 몇 주 뒤 나는 용인 수지에 열쇠 도매상을 창업하였다. 


대학시절 아버지나 사촌형이 일이 생기면 내가 매장을 봐주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권할 때 별 부담감은 없었다. 내가 늘 보던 모습이었고 가끔이지만 매장을 혼자 운영을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열쇠업은 내게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자영업자가 그러하듯이 혼자 매장을 운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인 수지에 나의 매장 간판이 올라가고 매장 안 물건이 들어오니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나는 아버지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열쇠업이 나의 천직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곳에서 23년째 열쇠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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