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치를 깎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입니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오늘 아침,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매장에 나와 있었다.
유난히 분주했던 새벽, 괜히 마음이 불안했던 걸까.
그 덕분인지, 이른 시간 울린 전화도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지금 문 좀 열 수 있나요?”


상대는 급한 말투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 문을 열어야 하는데, 열쇠를 잃어버렸단다.
나는 주소를 듣고 장비를 챙겨 서둘러 출발했다.


‘아침부터 개문이라니…’

(※ 개문이란 열쇠업계 용어로 ‘잠긴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10여 분쯤 달려 도착한 가게 앞.
문 앞에 선 고객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장사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인데, 문을 못 열고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같은 자영업자로서 나는 그 초조함을 너무나 잘 알았다.


나는 장비를 꺼내 빠르게 작업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금방, 문이 열렸다.
고객은 안도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오늘 좋은 하루 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문비는 3만 원입니다.”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고객이 말한다.
“1만 원만 받으세요.”


갑작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도움을 받겠다며 애타던 사람은 사라지고,
이제는 내 노동의 값을 ‘본인 기준’으로 책정하는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기본 출장비가 3만 원입니다.”
그러자 고객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다른 분은 2만 원에 해줬어요.”
“이 가게도 다른 사장님 소개받고 부른 거예요.”
“가까운데 그냥 싸게 해주세요.”


심지어 현금을 꺼내 들이밀며 말했다.
“이게 제가 가진 전부예요.”
지갑 안엔 만 원 두 장, 오천 원 한 장, 천 원 한 장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참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사장님, 제가 사장님 가게에 가서 밥 먹고 ‘오천 원밖에 없어요’ 하면, 그 돈만 받으시겠어요?”
“왜 제 가치를 사장님 마음대로 정하시나요?”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고객이 내미는 2만 원을 받고 말없이 매장을 떠났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다신 이 가게엔 오지 않겠다.’


이런 일, 처음이 아니다.
24년간 열쇠업을 하며 별의별 일을 겪었다.


8년 전 한 여름, 한 남성 고객이 전화를 했다.
문이 잠겼다며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고객은 팬티와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신문을 가지러 잠깐 나왔다가 문이 ‘덜컥’ 닫혀버린 것이다.


나는 최대한 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고객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개문비를 청구했다.

그런데, 고객은 갑자기 화를 내며
내 얼굴 앞에 오천 원짜리를 툭 던졌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순간, 바닥에 떨어진 오천 원을 보며 고민이 들었다.
‘이걸 줍는 순간, 내 자존심도 줍는 건가?’


나는 조용히 돌아서며 말했다.
“사장님, 손잡이가 이상한 것 같아요. 한 번만 나와보세요.”


고객이 의심 없이 밖으로 나오자,

나는 말없이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장비를 챙겨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 고객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객은 휴대폰도 집 안에 두고 나왔기에,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그 민망한 차림 그대로 나서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대응도 정당하지 않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내 가치를 쓰레기처럼 던진 사람에게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고객은 나의 가치를 존중해 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3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고객이 안방문이 잠겼다며 연락을 했다.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고객의 집 앞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전화를 걸자 고객은 말했다.
“죄송해요, 고속도로예요. 잠깐 졸았어요.”

"도착하면 전화할께요"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약속 시간 즈음, 고객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안 오셔도 돼요. 키 찾았어요.”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럼 출장비 3만 원 입금해 주세요.”


고객은 깜짝 놀랐다.
“아무 일도 안 하셨잖아요?”
“동네인데 그냥 와서 가신 건데요?”


하지만 나는 내 시간을 설명했다.
“약속 지키려 대기했고, 이동했고, 기다렸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건 제 시간에 대한 대가입니다.”


고객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 전화했다.
“사장님,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죄송합니다. 입금해 드릴게요.”


그 순간 나는 내 직업이,
그리고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누구나 말한다.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타인이 정한 가치 앞에서
우리는 흔들린다.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기술자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치를 지키려 애쓴다.


오늘처럼, 내 가치를 끝내 설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누군가가 나의 가치를 인정해줄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확신한다.
가치는 곧 자존감이다.
그걸 지켜낼 수 있었던 오늘,
나는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산 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연이 빚어낸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