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자영업자의 위기는 어느 날 툭,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내가 정한 나의 가치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닐 때,
그 위기는 낯선 얼굴로 내 앞에 앉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경기가 어렵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손님들은 더 촘촘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자영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가격표를 조용히 접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붙인 가격표는
몇 번의 외면과 침묵 앞에서
다시 구겨지고, 찢기고, 때론 지워진다.
물가는 오르지만
소득이 오르지 않은 고객 앞에서
그건 그저 ‘내 사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손님의 눈치를 보며,
내가 정한 가격표를 손에 꼭 쥐고 서 있다.
나는 자주 가던 김치찌개 집을 떠올린다.
진짜 맛있었다. 딱 내가 찾던 깊은 맛.
하지만 1만 원이라는 가격표는
나에게도 조금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갔다.
그 맛은 돈값을 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장님이 가격을 8천 원으로 내리셨다.
맛은 그대로인데도 말이다.
점심시간에도 한두 팀뿐이었던 그곳.
사장님의 결정은, 나의 일이기도 했다.
가치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나는 그 집 김치찌개에서 배웠다.
손님은 줄고,간간이 오는 전화는
“얼마예요?”
“다른 데는 더 싸던데요?”
“에이, 좀 깎아주시죠?”
전화 상담은 무료지만,
그 말들은 내 마음속 ‘가치’에 금을 낸다.
이해한다.
나도 소비자일 땐 가격을 따진다.
그러니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말들을 매일같이 들을 때다.
그러면 어느새 스며든다.
“내가 정한 이 가치, 정말 괜찮은 걸까?”
의심은 체념이 되고,
체념은 어느새 나의 기준이 된다.
작년,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적자를 봤다.
열쇠업 24년 만의 일이다.
‘열쇠는 경기 안 탄다’는 말은
이젠 나에겐 옛이야기다.
정부 대출로 겨우 숨을 골랐지만
그건 마치 물에 젖은 성냥 같았다.
갖다 붙이면 다시 꺼질 뿐이다.
올해 들어,
가치는 더 빠르게 무너졌다.
매장에 오는 손님들은
거의 모두 가격 비교를 하고,
“그 가격이면 그냥 인터넷에서 시킬게요.”
라는 말이 들릴 때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라는 문장이 마음속을 맴돈다.
그래도,
매장은 운영해야 하고
삶은 돌아야 한다.
얼마 전, 동종업계 친구가 매장에 들렀다.
“얼마 안 남더라도 가야 하냐?” 물었더니
그 친구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무조건 가야지.
지금 같은 시기에 뭘 따져?
매장에서 놀면 뭐 해?
단돈 1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면 가야지.”
참 쿨한 말이었고,
참 씁쓸한 말이었다.
우리는 이제 ‘벌기’보다 ‘덜 잃기’를 목표로 살아간다.
가치는 자존심이 아닌, 생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방금 전,
한 손님 앞에서 나는
결국 내가 정한 나의 가치를 외면하고 말았다.
그 순간,
무너지는 자존감과
안도하는 현실이 동시에 스쳤다.
어쨌든 문은 열렸고,
손님은 웃으며 돌아갔고,
나는 오늘 하루를 지켜냈다.
가치는,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외면했지만
내일은 지킬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문 앞에서,
나의 가치를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