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을 뿐이다.
문득 TV에서 나오는 여행 광고를 보다 말고,
창밖을 본다.
햇살이 참 좋아 오늘은 어딘가 멀리 떠나기 참 좋은 날씨인데,
나는 매장 유리문 안에 갇혀 있다.
몸도, 마음도.
가게 문을 잠그고 나서는 순간,
내 마음은 매장 안 어딘가에 두고 온 열쇠처럼 불안해진다.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단골 손님이 다신 오지 않으면 어쩌지,
지금 이 순간에도 경쟁업체는 문을 열고 있겠지.
머릿속 계산기와 상상이 끝없이 돌아간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결국,
매장을 비운다는 뜻이고,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비운다는 뜻이다.
나는 자영업자다.
가게가 곧 나고, 나의 하루는 가게의 문 여닫이에 맞춰 숨을 쉰다.
누구는 말한다.
“마음먹으면 가지, 왜 그렇게까지 해요?”
하지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일은 마음이 아니라 책임으로 하는 일이다.
쉬는 것도 허락이 필요하고, 떠나는 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몇 해 전, 결혼 10주년 여행을 떠날 때도 그랬다.
그 짧은 며칠이 그렇게도 버거웠다.
친구에게 가게 문을 대신 열어달라 부탁하고,
손님들에게는 출장 중이라 둘러댔다.
내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조심하고,
장사가 잘돼서 팔자 좋게 놀러 다닌다는 오해를 살까 봐 괜히 눈치를 보았다.
웃기지만 사실이다.
나는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비우면,
내 자리가 누군가의 자리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게 자영업자의 세계고, 현실이다.
자영업자는 서로를 견제하며 함께 쉬고, 함께 문을 연다.
암묵적인 동맹처럼, 여름 휴가는 7월 말에서 8월 초에만 가능하다.
누구 하나 삐끗하면, 돌아오는 것은 매출 손실과 단골의 이동이다.
우리는 그런 풍경에 너무 익숙해졌고,
이제는 익숙함이 족쇄처럼 나를 묶는다.
나는 안다.
내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떠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떠난 자리에 일어날 일들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장에 있고,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시간에 문을 닫는다.
고작 몇 킬로미터 벗어난 풍경조차
내겐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누군가 말한다.
“사는 게 여행이다”
하지만 나에겐
사는 게 여행을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젠가, 마음이 가게보다 먼저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나는 진짜로 어디든 떠날 수 있을까.
매장 유리문을 닫고, 미련 없이 한 발 내디딜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며
언젠가 떠날 여행을, 가슴속에 조용히 예약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