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의 기술, 20년의 시간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구멍 뚫는 일도 하시나요?"


가끔, 아니 자주 듣는 말이다.

어제도 누군가 그렇게 물었다.


“그냥 오셔서 구멍 하나만 뚫어주시면 돼요.”
“네, 출장비 포함해서 오만 원입니다.”

“네?? 너무 비싸네요. 그냥 뚫기만 하면 되는 건데요?”


이쯤 되면 나는 숨을 한번 고른다.
그분께는 ‘그냥’ 뚫는 구멍 하나지만,
내겐 20년 기술과 시간을 들여 얻은 ‘결정의 순간’이니까.


“손님, 저는 그 ‘그냥’ 하나를 위해 매장을 닫아야 합니다.
고객님 댁에 다녀오는 동안 저는 하루 매출의 절반을 포기해야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그냥’이 쉬운 일이었으면
손님도 직접 하셨을 테지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도 있고,
“출장일 하시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하고 받아치는 분도 있다.


당연함과 무례함 사이
그 사이를 자영업자는 매일 걸어야 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열쇠가게죠?
아이, 세 살인데 안에서 문을 잠갔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제발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그 마음을 알기에
그 어떤 의뢰보다 먼저 출발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울음소리는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내 손은 본능처럼 움직였다.


적쇠를 꺼내 구멍에 넣고,

덜컥.
5초도 안 되어 문이 열렸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울었고,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그런데 그 다음 말.


“얼마예요?”
“3만 원입니다.”
“그렇게 금방 하셨는데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만약 제가 30분 걸렸다면, 그럼 좀 덜 비쌌을까요?
혹시 늦게 열었으면 더 주실 생각이셨는지요?”


기술은 시간을 줄여줍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공짜’가 아닙니다.
그 5초가 가능해지기까지,
나는 20년을 반복하고 실패하고, 수없이 흙 묻은 손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예전, 초보 시절이 떠오릅니다.
구멍 하나 잘못 뚫었다가 문 전체를 교체할 뻔한 날.
다행히 고객님이 이해해주셨고, 나는 죄송한 마음에 디지털 도어락을 무료로 설치해 드렸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은 눈 감고도 뚫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은 쉬움과 다릅니다.
그저 익숙할 뿐, 여전히 ‘가볍지 않은 기술’입니다.


이따금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렇게 쉬운 일, 왜 그렇게 비싸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일은, 쉬워 보이기까지 20년이 걸린 일입니다.
고객님도 못하셔서 저를 부르신 거잖아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금방’ 해내는 일이지만,
그 금방은 수많은 실패와 훈련,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요리는 손맛이요, 사진은 눈맛이며, 열쇠는 손끝의 감각입니다.
그 감각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뚫는 건
단지 철문에 뚫는 구멍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식의 벽일지도 모릅니다.
그 벽을 뚫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합니다.
“5초의 기술, 20년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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