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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Feb 28. 2024

저기요... 다 들리는데요

자영업자 생존기

열쇠 출장일을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출장일을 요청했지만 문을 안 열어주거나 열렸다고 취소하거나 주인도 아닌 사람이 개문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에게 열쇠업이 가볍게 생각하는 직업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손님이 집안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디지털 도어록이 열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경비아저씨를 불러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밖에서 시도를 해도 열리지 않았다. 손님의 디지털 도어록이 안과 밖이 동시에 안 열리는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디지털 도어록을 뜯을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요즘에 나오는 디지털 도어록은 안에서는 기계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무조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열리지 않는 경우는 손잡이가 헛돌아 안쪽 걸쇠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는 손님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20분 남짓 달려 도착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문을 두드려 안에 갇혀있던 손님에게 비밀번호를 물어보았다.  

"비번이 어떻게 되세요?"

현관문 넘어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 3581입니다."

나는 손님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딱 띡 띡 띡' 소리와 함께 걸쇠가 움직였다. 걸쇠는 '스르륵 착' 소리 후 열린 음이 들렸다.


보통 손잡이 디지털 도어록의 경우 두 개의 잠금 걸쇠가 있다. 하나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것과 하나는 문을 고정할 때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의 경우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열리는 걸쇠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문을 고정할 때 쓰이는 걸쇠가 원인이었다. 이럴 때는 나의 경험상 힘을 주어 세게 당기면 열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철컥"

문이 열리자 안쪽에 초초하게 기다리던 집주인이 보였다. 


나는 손님에게 설명을 하였다.

"여기 보이시죠, 아마도 이곳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후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며, 손님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님은 내가 가져온 디지털 도어록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나는 손님에게 가격별로 진열한 뒤 설명을 하였다. 설명을 들은 손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지금 문 열었는데, 걸쇠하나가 고장 이래"

"그래서 아저씨에게 물어봤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어떡해야 돼?"

라며 손님은 바로 내 앞에서 통화를 하였다.


손님의 통화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스란히 나의 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나는 뻘쭘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님은 내가 있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손님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전에 당신 친구에게 설치했잖아!"

"다시 부탁하면 안 될까?"

"아니면 당신이 설치하던가?"

"이 아저씨 너무 비싸다니깐"

나는 손님의 통화에 '그래 비쌀 수 있지, 암요, 비쌀 수 있어요' 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실 비싸면 안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굳이 내 앞에서 다 들리게 통화를 해야 되나? 내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말없이 바닥에 늘어놓은 제품들은 챙겼다.

때마침 손님도 통화도 끝나있었다. 손님이 물었다.

"출장비가 얼마죠?"

"4만 원입니다"

그러자 손님이 깜짝 놀랐다.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문을 세게 잡아당긴 것뿐이잖아요"

그렇다. 손님의 말이 맞다. 나는 문을 세게 잡아당겨 문을 열어주었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23년간 쌓아온 내 경험은 무시한 채 말이다. 

솔직히 안팎으로 열리지 않는 경우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뜯는다. 그래야 디지털 도어록을 새로 설치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경험이 그러질 못했다. 죄라면 내가 경험이 많다는 것이겠지...


나는 내 경험을 무시한 손님에게는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었다. 

"제가 어렵게 열어주어야 했었나요?"

"도대체 왜? 손쉽게 열어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손쉬운걸 손님은 하지 못해 저에게 연락 주셨잖아요"

"그러면, 제가 디지털 도어록을 뜯고 열어주어야만 했을까요?"

손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안에서 들리는 무언가의 소리를 나는 막지 못했다.

잠시 후 손님은 현금 4만 원을 들고 나왔다. 나는 돈을 받고 서둘러 나왔다. 


위에 같은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23년 열쇠업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이따금 제품을 설명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휴대폰으로 제품 가격을 검색하는 일은 있어도 말이다. 비싸면 안 하면 된다. 그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을 해준 사람에게 예의는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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