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과 무례함의 사이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열쇠 출장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문제가 생겼다며 급하게 전화를 해 놓고

막상 도착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

방금까지 다급하게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끊고 취소하는 일.

심지어 본인 집도 아닌 곳의 대문을 열어달라는 사람까지.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열쇠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한 손님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모두 잠긴 상태.


보통 요즘 디지털 도어록은

안쪽은 기계식 구조라 문이 잘 안 잠기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열리지 않는다면,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개는 기기를 뜯어야 할 확률이 높다.


나는 상황을 듣고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문 너머 갇혀 있는 손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0000이요.”


숫자 네 개를 누르고,

나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딱, 띡 띡 띡… 스르륵, 착.

걸쇠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반쯤 열렸다.


손잡이를 잡고,

세게, 당겼다.

“철컥.”

닫혀 있던 세상이 열렸다.


문 너머엔

초조한 표정의 손님이 서 있었다.


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 걸쇠 부분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차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요.”


손님은 내가 가져온 도어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격이 어떻게 돼요?”


나는 제품별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손님은 내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문은 열렸는데 걸쇠가 고장 났대.”

“근데 이 아저씨 말이야, 너무 비싸.”

“전에 해주던 친구 있었잖아. 다시 부탁하면 안돼?”

“아니면 네가 직접 와서 설치하든가.”


그 모든 말이

고스란히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펼쳐둔 제품을 조용히 정리했다.


그제야 손님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출장비는 얼마예요?”

“4만 원입니다.”


손님의 눈이 커졌다.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그냥 문 한번 당기신 거잖아요?”


맞다.

말 그대로 문을 세게 한번 당겼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철컥’을

아무 손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순간

무엇을 건드려야 하고,

어디서 당겨야 하는지를 아는 이유는

24년 동안 쌓인 경험 때문이다.


초보 시절이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기기를 뜯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새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손상을 줄이고, 비용을 아껴주는 방법을 먼저 선택했다.


죄라면,

내가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잠시 후,

손님은 말없이 4만 원을 들고 나왔다.

나는 말없이 받았고,

묵묵히 자리를 떴다.


이런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제품 설명 중에 휴대폰으로 가격 검색하는 손님쯤은

이제 흔하다.

그 또한 소비자의 권리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에게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세상은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무례함’을 너무 쉽게 던진다.


내가 시간을 들였다고 말하면

“그건 당신 사정이잖아요.”

기술의 가치를 설명하면

“그게 뭐 어렵다고요?”


세상은 말한다.

“그냥 그거, 문 여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자기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문을 열기 위해,

나는 수많은 날을 반복해왔다.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은,

결코 ‘그냥’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 일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기를.


다만,

그 문 하나를 열기 위해

내가 지나온 시간과 노력을

단 몇 마디 말로 깎아내리지 않기를.


이 일은 내 생계지만,

그보다 먼저,

내 자존심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연함과 무례함 사이의 선을 지키며,

묵묵히,

문을 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도 당신에 손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