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처음엔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열쇠를 만들지도, 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저 열쇠를 쓰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전달하던 사람이었다. 도매업자로 시작한 내 일은, 말 그대로 ‘파는 일’이었다. 열쇠 사장님들이 찾아오면 어떤 재질이 좋고, 어떤 열쇠가 잘 팔리는지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손끝보다 입과 눈이 더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손에 쥔 열쇠 복사 기계가 하나 있었고, 마냥 남의 기술만 부러워할 수는 없었다. 복사 기술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섬세한 일이었다.
열쇠는 단순히 쇠를 깎는 게 아니었다.
핀 하나, 깊이 하나가 오차를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만 깊게 깎아도, 덜 깎아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실패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복사한 열쇠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 손님이 다시 매장을 찾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두고,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손님이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 환불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젊은 사장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많은 손님들이 “괜찮아요, 한 번 더 해봐요”라며 웃어주었다. 그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바뀌었고, 고마움은 기술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익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대가 나를 흔들었다.
도매와 소매의 경계가 무너지며 나는 내가 세워놓은 원칙을 내려놓아야 했다.
“도매는 소매를 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고집은 생존 앞에서 무너졌다.
결국 나는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10년 넘게 익힌 도매의 숙달을 접고, 이제 소매의 초보자가 되었다.
소매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문을 여는 기술, 설치하는 기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감각.
어디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친한 사장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기술을 보며 메모하고, 밤엔 집에서 손으로 따라했다.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나도 열쇠 하나쯤은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쉽게 출장을 나서지 못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첫 출장을 나섰다.
차 안에서 심장은 마치 처음 면접을 보던 날처럼 뛰었다.
현장에 도착해 문 앞에 서자, 손은 떨렸고, 도구는 말을 듣지 않았다.
30분 동안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며,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지금 손님은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설마 바보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냥 포기한다고 말할까?’
그때, 왼손에 쥐고 있던 꺾쇠가 휘리릭 돌며 문이 열렸다.
우연처럼, 그러나 내겐 기적처럼.
손님이 환하게 웃으며 비용을 지불했다.
그제야 나의 어깨에서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더 많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처음의 떨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익숙해지는 과정은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다.
유리문을 실수로 깨뜨린 날도 있었고, 잘못 뚫은 구멍 탓에 문 전체를 교체한 날도 있었다. 원본과 복사본을 바꿔 깎아 손해를 본 날도 있었다. 경매현장에서 멱살을 잡히기도 했고, 고독사한 집의 문을 여는 날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삶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실수와 실패, 두려움과 떨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 숙달된 전문가다.
하지만 그 ‘숙달’은 단단한 기술보다 더 많은 실패를 통과해 얻은 것이다.
숙달이란 실수를 줄여가는 사람이 쌓는 시간이자,
자신의 할 수 있는 영역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걸 할 수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직하게 해내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전문가의 모습이다.
지금도 나는 문을 연다.
어떤 날은 금세 열리고, 어떤 날은 생각보다 더디게 열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깎여야 하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