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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은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스물넷.

남들은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열쇠 하나를 손에 쥐었다.
괜찮은 직장, 안정된 생활 같은 말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빨리 찾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열쇠업.


열쇠의 세계는 의외로 깊었다.
도매, 중도매, 소도매, 그리고 소매.
나는 그중 중간을 지켰다.

화려하진 않아도 묵묵히 필요한 것을 건네는 역할.
그 자리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고, 나만의 원칙도 있었다.


그때는 상도의가 존재했다.
지역은 나누어져 있었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인터넷이 들이닥치자, 룰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누구나 클릭 몇 번이면 열쇠 하나쯤은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도매상들은 더 이상 지역을 지키지 않았고,
차에 물건을 싣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까마'라는 일본식 표현으로 불리던 그들.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있었다.


무조건 구색을 갖추는 것.
어떤 손님이 어떤 물건을 찾더라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사들였다.
그렇게 나는 ‘열쇠 만물상’이 되었고,
“거기 가면 뭐든지 있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장사는 잘됐다.
금융위기에도 버텼고,
전화기는 종일 울렸고,
다른 열쇠업자들도 자주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특별함'은 점점 무게가 되었다.
온라인 쇼핑몰이 점점 커지자,
내 구색은 더 이상 특별함이 아니게 되었다.
남들은 한 개만 사면 되는데,
나는 열 개를, 한 박스를 샀다.
그래야 가격이 맞았으니까.


그렇게 쌓인 물건들.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재고들.
지금 내 매장의 90%는 1년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한 물건들이다.
가격으로 치면, 3억 원쯤 된다.
팔지 못한 열쇠들이 쌓인 매장은 점점 나를 짓눌렀고,
언젠가부터 숨이 막혔다.


하루는 매장 문을 열다가 멈칫했다.
입구부터 빼곡히 쌓인 박스들.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답답한데, 손님은 오죽할까.”


그렇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매장 불을 끄고 싶었다.


그때 만난 책 한 권, 『해빙』.
그 책을 덮고 나는 결심했다.
버리자. 내려놓자.


매장의 반을 잘라냈고,
십수 년을 짊어지고 있던 재고들을
고물상에 팔아 넘겼다.
원가의 10분의 1도 못 받았지만,
돌아온 건 공간이었다.


그 빈 공간에 나는 카페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열쇠 가게에 웬 카페예요?”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내가 나를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 안에서 독서모임을 열고,
사람들과 삶을 나누었다.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조깅화 끈을 묶고 새벽길을 달리기도 했다.
근육에 빠져 헬스장을 드나들기도 했다.


한때는 ‘구색’으로 특별해지려 했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로 특별해지고 싶다.
그게 진짜 ‘나를 위한 특별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열쇠로 시작한 내 인생,
이제는 그 열쇠로
내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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