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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Jun 03. 2024

나의 특별함

자영업자 생존기

나는 열쇠업을 시작한 지 24년 차이다. 대학졸업 후 바로 열쇠업에 뛰어들었다. 열쇠업은 도매와 소매로 나누어 진다. 더 세분화하면 대도매, 중도매, 차로 파는 소도매, 그리고 소매로 나누어 진다. 그중 나는 중도매였다. 


도매 특성상 소매는 광고를 하거나 직접 설치를 하러 다니진 않았다. 그 당시 상도는 엄격히 규제되었다. 아마도 온라인이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였다. 인터넷이 점점 발전되면서 온라인 도매가 생기면서 이런 상도는 깨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판매만 하던 각 지역의 도매상들은 가격경쟁에서 점점 밀리기 되었다. 그래서 도매상들은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차로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속된 일본 말로 '나까마'라고 불렀다. 


나는 나의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특별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구색을 갖추는 일이었다. 차로 다니는 '나까마' 업자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손님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쇠 만물상이 되었다.

'열쇠에 관한 모든 것이 내 매장에 가면 있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열쇠업자들이 찾아왔다. 열쇠 개업의 문의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더욱 구색을 갖추려 노력했다. 그 특별함 때문일까? 나는 금융위기에도 제법 장사가 잘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나만 가지고 있던 특별함은 인터넷 쇼핑몰에 의해 점점 사라졌다. 게다가 도매의 특성 때문에 구색을 갖추느라 재고는 점점 늘어났다. (예를 들어 어떤 열쇠업자가 필요한 개수가 한 개라면 나는 열개 또는 한 박스를 구매를 해야 했다. 그래야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매장에 90%는 그때 구입한 일 년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하는 악성재고들이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3억 원은 될 것 같다.


특별함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는다. 나는 구색을 무기로 특별해지려고 하였다.  아주 잠깐 특별함을 맞보기도 하였지만 그 특별함 때문에 더 이상 매장 운영을 하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열쇠업을 접을지, 도매를 접을지에 대해 선택해야 했다.


일단 나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내 주위의 소매열쇠점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구색으로 이익을 얼마나 되는가? 이대로 지속한다면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무엇하나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며칠 고민 끝에 나는 열쇠도매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주위 열쇠사장님들의 양해를 얻고 소매를 하기 시작했다. 소매를 시작하니 나의 구색은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금 갖춘 것만으로도 몇 년은 충분히 버틸양이었다. 재료 구입이 없으니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일반 열쇠점과 다를 바 없는 매장이 되었다. 다른 소매매장과 차이라면 매장이 크고 물건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입구부터 꽉 들어차있는 물건을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나도 그럴진대 손님은 오죽하랴...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악성재고들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번아웃..... 그리고 수많은 책을 읽었던 중 나는 한 권을 책을 만났다. '해빙'  

나는 그날로 매장의 반을 자르고 악송재고들은 고물상에 팔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팔리지 않는 악성재고들이 넌덜머리가 났다. 매장에 십수 년 동안 차지하고 있던 물건이 사라지자 공간이란 것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공간을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카페를 만들었다. 열쇠매장에 카페라니... 전국을 돌아다녀도 없을 나만의 특별함이었다. 비록 고물로 팔아 원가의 10분의 1도 못 건졌지만 그 덕에 나의 특별함을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이 특별함은 전에 구색을 갖추던 특별함과는 달랐다. 바로 나를 위한 특별함...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특별함이었다. 나는 독서모임장도 해보고, 여행자의 삶도 살아보고, 러너도 되어보고, 근육돼지도 되어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다양한 일에 망설임 없이 해보았다. 특별함이란? 나를 위한 특별함, 그것이 내가 가져야 할 특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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