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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짜리 매장에서 다시 시작한 나의 리셋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나의 매장은 열쇠 매장은 15평.

일반 열쇠 소매점의 두 배 크기다.
물론 내가 도매까지 겸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뭐 당연한 공간이라 여겼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없는 게 없는 가게’라는 말을 실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없는 게 없다는 건 결국 다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팔리는 건 없다는 뜻일까?’


결국, 그 물건들 중 70%는 악성 재고였다.
“언젠가 나가겠지.” 하며 쌓아둔 것들이
언제부턴가 나보다 더 이 매장의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한 권이 내 등을 툭 하고 치고 갔다.
바로 『더 해빙』이었다.


책에서 무언가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덮은 순간,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가,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지?”
작디작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 그리고 열쇠 더미와 좁디좁은 손님 공간.
그 풍경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숨 막히게 다가왔다.


나는 갑자기 매장을 둘러봤다.
진열대마다 자리 잡은 ‘언제 나갈지 모르는’ 제품들.
일 년에 한 번도 안 팔리는 녀석들이다.


그 순간, 마치 다른 세상의 내가 나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이 먼저 움직였다.
분류하고, 걷어내고, 분해하고, 치우고, 쓸고…
결국,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지가 두 개,
먼지 낀 열쇠 더미들과 19년 쌓인 후회가 함께 매장 밖으로 나갔다.


"이쯤 하면 다음날은 쉴 만도 하지 않냐?"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날 새벽 6시, 나는 매장에 다시 있었다.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는 이 신기한 경험,
이게 바로 ‘의지’의 기세등등함이랄까.


매장 밖 도로에는 여전히 종이 박스, 플라스틱, 쓰레기봉지들이 쌓여갔다.
주변 상인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사 가세요?”
“매장 정리하시는 거예요?”


사실 그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 싶었다.
진짜로 나는 익숙함에서 이사 가는 중이었으니까.
그 어떤 물리적인 주소 이전보다 더 어려운 이사였다.


그렇게 일주일.
마침내 매장 한쪽에 생긴 여백,
딱 봐도 8명은 앉을 수 있는 너른 공간이 생겼다.
나는 그 자리에 아주 특별한 걸 만들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열쇠’를 떠올리지 않게 할 계획이었다.


열쇠 매장이지만,
문을 여는 건 손이 아니라 마음이니까.


그리고 지금,
내 의지는 초여름 햇살처럼 여전히 뜨겁다.
팔리지 않아도 좋다.
이 공간만큼은, 나를 위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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