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열쇠 매장 한편에 카페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거기서 커피를 누가 마셔?”
그들의 물음은 어쩌면 당연했다. 열쇠, 자물쇠, 도어록이 어지럽게 진열된 공간에 은은한 커피 향이 감돌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조건이 있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일 것.”
그리고 그 공간에는,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시야 안에는 ‘열쇠’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 시작은 색에서부터였다.
쇠의 침침한 질감이 주는 무게감은 늘 내 일상의 공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매장의 바탕색부터 바꿔야 했다. 마침 4월, 가로수 가지에 돋아난 새순을 보며 나는 ‘초록’을 떠올렸다.
초록은 나에게 생기고, 희망이고, 무엇보다 ‘다시’의 언어였다.
그리하여 나는 내 삶의 2막을 여는 초록의 색감을 찾아 나섰다.
연한 그린과 진한 초록이 사선으로 칠해진 벽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붙들었다.
정형화된 그린이 아니라,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는 색.
하지만 그 색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마치 오아시스처럼 내 매장 주변 인테리어 골목에서 원하는 페인트 가게를 찾게 되었고, 결국 내가 상상하던 그 색을 얻을 수 있었다.
공사는 한 달 남짓 걸렸다.
연초록과 진초록이 어우러진 벽면, 연한 그린의 선반, 제품을 감춰주는 장.
밋밋한 장 문엔 당근마켓에서 건져온 액자를 하나 붙여 웃음을 더했고,
모서리에는 벤자민과 고무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초록 한편에 나는 작은 ‘카페’를 넣었다.
이 공간은 철저히 나만을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20년간 열쇠 가득한 매장을 들어올 때마다, 어떤 손님은 한숨처럼 말하곤 했다.
“여기 참... 꽉 찼네요.”
직접 손님을 데리고 오는 거래처 사장님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던가.
소개해주는 매장이 산뜻하면, 소개하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한 달이면 바꿀 수 있었던 공간을, 왜 나는 20년을 그대로 살아왔을까?
생각해 보면 매장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익숙함의 공기였고,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던 관성의 벽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아무 일도 없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제 그만 지루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이, 나를 카페로 이끌었다.
누군가 말한다.
“그래서 매상은 좀 늘었어요?”
글쎄,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열쇠 손님이 99.9%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내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미소 짓는다.
왜냐고?
그 공간이 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열쇠 대신 커피 향이 머무는 곳.
바로 지금, 내가 열쇠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