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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매기니, 마음이 닿았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열쇠 매장 한편에 작게 마련한 카페 공간.

그 시작은 참 단순했다.

좋아하는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고 싶었고,

손님에게도 한 잔 나눠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

작고 진심 어린 바람.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참 많은 손님이 다녀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99.9%는 ‘커피’가 아닌 ‘열쇠’ 때문에 온 손님이었다.


나는 여전히 열쇠를 설명하듯

커피도 설명했다.


“이 원두는 제가 직접 고른 거예요. 정말 맛있어요.”

“드셔보시겠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똑같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짧은 말이

커피 한 잔의 진심을 막아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사람들이 진짜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공짜라서 그런 건 아닐까?’


사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식당에서 나온 서비스 커피.

마실 땐 늘 애매한 표정이었고,

그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

맛이나 기분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커피도 혹시 그렇게 보였던 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원두를 써도

‘열쇠집에서 주는 공짜 커피’는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가격표를 붙여보자.’


나는 조용히 테이블마다

메뉴판을 올려두었다.


“행복 아메리카노 3,000원”


물론 실제로 돈을 받진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단지 한 가지.


“이 커피에는 값어치가 있습니다.”

라는 작은 메시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메뉴판 하나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기 커피도 파세요?”

“오~ 직접 내려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나는 전보다 더 부드럽게 말했다.


“한 잔 드릴까요?”


이번엔 대답이 달랐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잘 마실게요~”


같은 커피,

같은 사람,

같은 말투였는데도

단 하나, ‘가격표’ 하나가 바꾼 분위기.


그날 이후,

커피는 나와 손님 사이의 작은 다리가 되었다.

어색했던 대화는 부드러워졌고,

커피를 마시며 문고리를 고치는 시간 사이로

작은 인연들이 피어났다.


어느 날은

커피를 마신 손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저랑 일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진짜였다.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기분은 꽤 괜찮았다.


이 작은 실험을 통해

나는 중요한 걸 하나 배웠다.


공짜가 언제나 따뜻한 건 아니다.


때로는

무언가를 ‘공짜’로 준다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를 깎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적당한 가격표가 필요하다.


그건 돈을 받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과 노력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다.


열쇠를 하러 온 사람에게

커피를 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 진심이 담긴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기억 한 모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세상엔

‘공짜’보다 더 값진 공짜도 있다.


값을 매겼기에,

더 소중해지는 마음.

그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그 한 잔이면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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