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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똥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납니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엔 꽃 같은 사람도 있고, 똥 같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그 모든 향기와 악취를 지나야만 한다.


결국 중요한 건

꽃을 꺾지 않는 손보다도,

똥을 밟아도 감정까지 들이지 않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어제 나는,

내 인생 최악의 똥을 밟았다.


24년 동안 자영업을 하며

정말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그건 그냥 똥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상식과 예의를 전부 이질감으로 바꿔버리는 이물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그런 날카로운 불쾌감이었다.


그녀는 소개로 만나게 된 고객이었다.

“제일 잘 나가는 걸로 해주세요.”

시원시원한 말투에 처음엔 괜찮은 분이라 여겼다.

제품을 챙기고, 약속을 잡고, 나는 마음까지 느긋했다.


그런데 약속 당일, 그녀는 말했다.

“왜 안 오세요?”


나는 당황했다.

“3~4시로 약속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내 메모에도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전 그런 적 없어요. 절대로 아닌데요?”


그녀의 확신 앞에

나는 내 기억조차 흔들렸다.

결국 사과했다.

진실보다 평화가 급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수원 영통까지,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액셀을 밟았다.

졸음은 스며들고, 감정은 속도를 더했다.

다행히 조금 일찍 도착했다.


사과를 건네고, 제품을 보여드리고,

설치를 준비하던 중

그녀는 덧붙였다.

“위에 문 잡아주는 것도 해주시는 거죠?”


그건 추가 비용이 드는 도어크루저 작업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비싸요. 제가 사 올게요. 설치만 해주세요.”


그래도 나는 물러섰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살아온 세월.

나는 늘 조금씩 물러나곤 한다.


“그럼 설치비만 3만 원에 해드릴게요.”

그녀는 바로 되받았다.

“무상은 안돼나요?”


그 순간,

나는 뒷걸음질 치던 마음의 발끝이

어느새 절벽 끝에 와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녀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불렀다.


잠시후 관리사무소 직원이 도착하자,

그녀는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분 너무 비싸요.”


말의 칼날이 부끄러움도 없이 내게 박혔다.

나는 웃으며 해체한 도어크루저를 그녀에게 돌려줬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고,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았다.


관리사무소 직원과의 어색한 침묵.

나는 그라인더를 꺼내 문에 남은 피스 자국을 갈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작업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분노를 깎아내리는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철물점에 없대요. 그거 저한테 파시면 안 돼요?”


내 귀를 의심했다.

관리실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예의를 베푸는 건

늘 한쪽만 상처 입는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마치

방금 전까지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말끝마다 불편함을 흘렸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처음에 골랐던

디지털 도어록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이 색 싫어요.”

“처음에 보여드렸잖아요.”

“그건 모르겠고요.”

“아무튼 우리 집은 블랙 앤 실버인데

이건 로즈골드잖아요.”


나는 입술을 다물고 말했다.


“그럼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 저는 가겠습니다.”


그녀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시든가요.”


나는 아무 말 없이

흩어져 있던 물건을 다시 담았다.

흩어진 내 마음처럼 허무해 보였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익숙하지만 지친 중년의 한 사람.

나는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았다.


똥을 제대로 밟은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똥을 밟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냄새를 감정까지 들여놓느냐,

구두를 털고 다시 걷느냐는

오롯이 내 선택이라는 걸 말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말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는 이유는,

그 말이 내 마음속의 열등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시간과 노력을 무시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 자신이 먼저

내 시간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좋은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거절’도 때로는 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술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꽃을, 때로는 똥을.


하지만 이제는 안다.

똥을 밟더라도, 감정까지 묻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감정의 구두는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위해

아껴야 할 자산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또 그런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그 사람이 내 하루를 더럽힌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한 겹 더 단단하게 만든 진흙 같은 존재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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