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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Aug 22. 2024

똥을 밟으면 나는 성장한다.

자영업자 생존기

사람을 만나는 직업에서 똥(진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똥을 만날 때 내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옛말에 똥을 밟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하지 않던가? 똥차를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을 만나는 직업에서 똥(진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똥을 다시 만날 때 내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나는 그 똥들을  삶의 지혜라 생각한다. 다시는 같은 똥을 밟지 말라는 미래의 예언서라고 할까? 덤으로 똥들을 겪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어제 나는 내 인생 최악의 똥을 만났다. 그 똥은 24년 동안 겪지 못한 똥이었으며, 다른 세상의 똥이었다. 


거래처 인테리어 사장님의 소개로 만난 어느 한 고객이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에게 "거기에 제일 잘 나가는 제품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성격도 시원시원해 보인 그녀에게 나는 여러 가지 제품을 가져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와 시간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이틀뒤 그녀와 만나기로 한날이 되었다. 아침에는 가족모임을 하고 그녀와의 약속은 오후 3~4시로 잡은 터라 느긋하게 매장으로 가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을 무렵 한통의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나에게 말했다. "왜 안 오세요" 

나는 내가 잘못 드러나 싶어 다시 물었다. "오늘 3~4시에 약속 잡았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제가요? 전 그런 적이 없는데요" 

나는 주머니에 있는 쪽지를 보았다. 역시 거기에는 3~4시로 적혀있었다.

"적어놓은 쪽지에 3~4시로 되어있어요"

내 대답이 조금 짜증이 났는지 그녀는 볼맨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제가 그럴 리 없고요, 오늘 약속이 4시에 있어 절대로 아니에요, 기사님이 잘못 적으셨겠죠"

너무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정말 내가 잘못 적었나 싶어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수원 영통까지 네비를 켰다. 네비는 목적지까지 한 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새벽부터 움직였던 터라 졸음은 밀려오고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다행히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하고 서둘러 장비를 챙겨 그녀의 집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까지 10 초남짓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지.. 그녀의 확신한 말투에 나는 기가 눌려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보이자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가지고 온 여러 가지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처음에 말한 제품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디지털도어록 설치 준비를 하였다.


다른 제품을 정리하고  제품을 설치하려 할 때 그녀가 말했다.

"위에 문 잡아주는 것도 해주시는 거죠?"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 말은 한 적은 없는데요"

"제가 서비스로 해주는 것은 도어스톱퍼, 우유투입구 그리고 외시경입니다"

"그건 별도로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얼마냐고 물었고 나는 8만 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자기가 철물점에 사 올 테니 그냥 설치만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발 물러서서 "그럼 사장님 소개로 왔으니 6만 원에 해줄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그것도 비싸다며, 자기가 철물점에 사 올 테니 설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설치비는 4만 원이라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무상으로 해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이때부터 내가 알고 있던 쿨한 성격의 그녀는 없었다.

당연히 나는 그녀의 제안에 거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설치도 관리사무소에 말하고라며 위에 설치된 것을 해체는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녀와 나 사이의 문제는 일단락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위에 도어크루저를 해체하는 동안 그녀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몇 분 뒤 관리실 직원 한분이 오셨다. 

그 직원은 내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저분에게 부탁하시지..." 

그러자 그녀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저분은 너무 비싸서요"

대놓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개로 받은 고객이라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가지고 가서 똑같은 거 사 오시면 돼요"

그녀는 내가 건넨 도어크루져를 받아 들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녀의 집 앞에 관리실 직원과 나만 있는 현실이 괴상스러웠다. 관리실 직원을 옆에 두고 나는 그라인더로 문에 있는 나사구멍을 갈기시작했다. 그래야 다음날 필름을 붙이는 작업자가 일을 할 때 편하게 할 수 있다. 서비스 차원이지만 나도 그렇고 필름시공자도 그렇고 다 같은 자영업자가 아닌가? 자영업자에게 하자나 클레임은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10분 남짓 되었을 때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여기 철물점에는 도어크루져가 없다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사장님 그거 저한테 파시면 안 될까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제 물건을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옆에 관리실 직원을 보았다. 그도 고개를 흔들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의 도리를 그녀는 모른다는 말인가?  나는 화가 났지만 그냥 갈 수도 없었다. 피 같은 시간을 1시간 넘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간신히 멘털이 나간 몸을 다시 움직였다.


5분 남짓 일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였다. 그녀가 보이자 관리실 직원이 말했다.

"웬만하면 저분에게 하시죠?"

"그리고 관리실에게 이런 거 설치 안 해줘요"

이런 관리실 직원의 말에 그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당당히 나에게 물건을 건네받고는 관리실 직원에게 건넸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디지털 도어록 설치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같은 공간이라 의식적으로 피해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눈에 관리실 직원이 조립에 애를 먹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도 지금 공간이 어색하고 짜증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하던 것을 멈추고 대신 조립을 해주었다. 내가 설치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관리실 직원을 보내고 나는 디지털 도어록을 다시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위에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도어록 구멍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가져온 보강판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구멍이 보여서 보강판을 설치해야 됩니다"

"비용은 만원입니다" 

그러자 눈이 커진 그녀가 말했다.

"필름으로 가려지지 않나요?"

"가려는 집니다, 안에 만요"

"바깥쪽은 구멍은 보여 보강판을 설치해야 돼요"

나는 손으로 구멍을 가리켰다.

사실 아는 사장님 소개라 이것도 서비스로 해주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무례한 행동에 보강판까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결단이 선 사람처럼 손으로 디지털 도어록 박스를 보며 말했다.

"전 이 색깔 싫은데요"

"네?"

"전 이 색깔 싫다고요"

"우리 집 컨셉은 실버와 블랙인데 이건 로즈골드색깔이잖아요"

"다른 것 없나요?"

'갑자기, 왜?. 지금에 와서' 내가 설치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그녀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 말씀하셔야지요"

"지금 이 물건 밖에 없어요"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니요, 전 이 제품 싫다고요!"

"저희 집 컨셉과 맞지 않는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깐, 처음에 말씀하셨어야지요!"

"물건을 다 보고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전 그런 거 모르겠고요, 하여간 이 제품은 싫어요!"


나는 얼굴이 점점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더 이상 무례한 그녀가 있는 공간에 머무를 힘이 없었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면 다른데 알아보세요"

"저는 그냥 가겠습니다"

이런 나에 말에 그녀는 차갑게 "그러시던가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아쉬운 것 없었다. 이미 내가 내일 필름을 붙이기 쉽게 밑작업을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왜 중요하지 그녀는 잘 알았다. (내가 자세히 설명을 했기 때문에..)그리고 내가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터였다.

나는 허탈한 마음을 안고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허비한 나의 2시간 남짓의 시간이 무례한 그녀에게 쓰였다는 것에 화가 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감정의 휩쓸린 활화산과 같았다. 

하여 나는 차 안에서 멘털을 잡아야 했다. 지금 나의 감정이 주변사람에게 옮겨가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더 늦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이 되새겼다. 그리고 다음에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피할 수 있게 교훈을 준 무례한 똥에게 감사함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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