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스물넷의 어느 봄날, 나는 낯설고도 조심스레
작은 열쇠 가게의 셔터를 올렸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단지 손님만이 아니었다.
청춘이었고,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쌓고, 다져가며
나는 그렇게 24년을 같은 자리에서 살아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가게였지만
나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장사 안 되는 날에도
매장 문을 열고 나서면
그 안에는 내가 견뎌야 할 오늘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 공간이 더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 임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마디는 이랬다.
“옆 매장도 올려줬으니, 열쇠도 올려줘야죠.”
그 짧은 말에 심장이 요동쳤다.
3년 전에도 그랬다.
코로나 한복판, 모두가 버티던 그때
그는 30%의 월세 인상을 요구했다.
나는 간곡히 5년 계약을 제안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또다시 ‘정당한 권리’라는 이름으로
5%를 더 올려달라고 말했다.
24년간 하루도 월세를 밀리지 않은 나의 시간은
그의 계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착한 임차인이었다.
계약서를 성실히 지키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보호가 아니었다.
'다음엔 더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이었다.
나는 임대인에게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서러움, 분노, 허탈함…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가장 오래 지켜온 것이 가장 먼저 무너질 때,
사람은 마음 안쪽에서부터 아프다.
나는 이제 그 문을 열어야 한다.
타인의 권리와 기준으로 살아온 삶에서
나의 기준, 나의 권리로 나아가는 문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 오래
남의 건물 안에서 내 인생을 살아왔다.
그것이 때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믿었지만
결국 내 발밑에 땅은 없었다.
자영업을 시작할 때,
누구도 ‘언제 떠나야 할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머무름’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떠남’이 나를 다시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24년을 닫고, 이제는 나를 위한 문을 엽니다.
매일 남의 문을 열어주던 열쇠였지만
이번만큼은 내 마음을, 내 가능성을
그리고 내 다음을 여는 열쇠로 쓰려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문을 열기 전까지,
다른 이의 문 앞에서만 서성일뿐이다.”
— 파울로 코엘료
이제는 더 이상 ‘좋은 임차인’으로 남기보다는
나를 아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지켜온 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그 시간의 무게를 다음 문으로 옮기려 한다.
언제나처럼, 열쇠는 내 손에 있다.
이번엔 나를 위해 돌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