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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조용히, 가장 아픈 곳에서 시작된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똥은 피하거나 닦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뢰는 다르다.
보이지 않게 땅속에 숨죽인 채 있다가, 내가 가장 힘들고 약할 때,
기어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를 덫처럼 덮쳐온다.


지뢰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내 말투, 내 성격, 나의 반복되는 감정까지 꿰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다, 내가 가장 흔들릴 때 터진다.
그 상처는 피 흘리지 않지만, 속을 무너뜨린다.


얼마 전, 임대인의 전화 한 통이 내 안의 지뢰를 터뜨렸다.
“임대료를 올리겠습니다.”
그 말은 너무 짧았지만, 24년 동안 같은 공간을 지켜온 나에게는
존재의 이유를 흔드는 한 문장이었다.


코로나와 경제불황, 버티고 또 버텨온 자영업자에게
임대료 인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건 생존의 끈을 놓아도 괜찮다는 무언의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서러움이 분노가 되고, 다시 서러움으로 돌아오는 그 몇 날 며칠의 밤.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아, 이건 내 권한 밖의 일이구나.’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이 지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결론은 명확했다.
더 이상 임차인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이제는 내가 임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찰스 다윈의 말처럼,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나는 임대료를 월세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걸 은행이자라고 생각해보았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그간 내가 낸 월세는 수억에 달했고,
그 돈은 누군가의 건물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내 공간을 가지는 게 ‘꿈’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뢰는 임대료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지뢰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5년째 거래하던 사장님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나에게 말했다.


“넌 참 좋겠다.”
“장사 잘돼서... 일 좀 주라.”


처음엔 그저 가벼운 농담이라 여겼다.
그러나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 한 구석이 점점 닳아갔다.
매일 아침 내 자존심에 작은 못을 박듯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나의 반응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내 일상은 그로 인해 뒤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견디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더 자주, 더 집요하게 찾아왔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예민한 건가?’
‘그냥 흘려들으면 될 말을 왜 이렇게 마음에 두는 걸까?’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내 마음에 이미 오래전부터 묻혀 있던 지뢰였다.
사람은 반복된 말에도 상처받는다.
말은 무겁고, 관계는 섬세하니까.


그 무렵, 아내가 말했다.
“습관 바꾸는 강의라도 들어봐.”
나는 냉소했다.
“습관을 돈 주고 배우는 게 말이 되냐고?”
“강의 하나 듣는다고 뭐가 바뀌겠어.”


하지만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고,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배웠다.
사람은 남을 바꾸는 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
자기 자신을 다듬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해, 나는 100권의 책을 읽었다.
생각이 달라졌고, 마음이 넓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했던 내 매장을 뒤엎었다.
매장의 반을 카페로 만들고,
책을 읽는 손님들과 함께 독서모임도 열었다.


예전과 달라진 공간에 그는 더 이상 편하게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저 사람, 결국 예전으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변했고,
지뢰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자유는 책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나는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책임을 졌다.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지뢰 위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그리고 늘, 가장 아픈 곳에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천천히,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 달라졌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를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에도 지뢰는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말, 반복되는 상처, 반복되는 상황.
하지만 그 안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견디는 나 자신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가장 아픈 곳을 먼저 마주하라.
그곳이 바로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변했고, 지뢰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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