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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과 강요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물건을 고르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채로운 생각과 기준이 숨어 있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추천을 해야 하는 자리라면, 그 선택은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책임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는 그걸 한 달 전, 소개받은 손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한 달 전쯤, 인테리어 사장님의 소개로 한 손님이 매장을 방문했다. 사장님과는 몇 번 일을 같이 해봤고, 믿음이 가는 분이라 그 소개라는 말에 자연스레 마음을 열게 되었다. 손님 역시 매너도 좋고 차분한 인상이었다. 나는 손님에게 여러 개의 제품을 보여드렸고, 손님은 그중 한 가지를 고르셨다. 다만 정확한 설치 일정은 “지금 인테리어 중이라서 날짜는 사장님과 상의해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손님은 제품만 선택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네, 사장님과 연락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인테리어 사장님과 통화한 후, 일정에 맞춰 달력에 메모를 해 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마침 그 시점에 맞춰 신제품이 곧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그러나 손님에게는 제품을 보여드릴 때 신제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아직 출시일이 확정되지 않았고, 괜히 그것 때문에 혼란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출시가 손님이 원하는 날짜보다 빠르다면, 그때 다시 연락드려도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손님과 약속한 시공일이 다가왔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히게도, 신제품이 매장에 들어온 날이 바로 그 전날이었다. 나는 이 타이밍을 운이라고 여겼다. 제품도 신형이고, 무상 AS 기간도 3년으로 이전 제품의 AS기간보다 2년이 더 길었다. 디자인도 훨씬 더 마음에 들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신제품의 가격의 조금 더 비쌌으나 가격으로 인해 손님에게 혼동을 주기 싫어 이전 제품과 동일한 가격으로 해드릴 생각이었다. 이런 마음에 나는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오늘 신제품이 나왔습니다. 무상 AS는 3년이고요, 디자인도 많이 개선됐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이 말을 전하면서 괜히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좋은 걸 알려드린다는 자부심과, 당연히 손님도 기뻐하실 거라는 기대가 섞여 있었다.

손님은 내 설명을 듣고 “두 제품 사진을 비교해서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제품 사진을 찍어 보냈고, 최대한 신제품이 돋보이도록 구도도 조정하고 조명도 신경 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에게서 답이 왔다.

“글쎄요? 전 제품이 더 좋아 보이네요.”

이런 고객의 말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달라 당황스러웠다.


신제품이 성능도, 디자인도, 사후 관리도 모두 향상되었고, 가격도 변동이 없었다. 정말 모든 면에서 좋았다. 이런 생각에 나는 조금 강한 어조로 어필했다.

“신제품이 사실 가격은 좀 더 비싸지만, 소개로 오신 분이니 기존 가격 그대로 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AS도 3년이라 이 제품을 선택하시는 것이 더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내 말투가 부담스러웠는지 손님은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손님의 조금 냉랭한 말투에 들리지 않는 휴대폰을 몇 분을 귀에 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 무슨 이유에서 엇박이 났을까?


소개를 받는다는 건 단순히 소개로 끝나지 않는다. 소개를 해준 사람과 소개를 받은 사람을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수한 성능과 가격 모두 만족할만한 제품을 소개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소개를 해준 사람과 소개를 받는 사람에 대하 예의이다. 하지만 이런 내 기준과 열정이 상대에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미 손님은 마음을 정한 상태였고, 내 말이 그 손님의 결정을 다시 흔드는 것이라면, 내가 기대했던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내 기준일 뿐이다.


1시간이 지나 손님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냥 전에 선택한 제품으로 시공해 주세요.”
손님의 짧은 한 마디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손님의 깊은 고민과 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설득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제가 괜히 신경 쓰시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같은 말을 되뇌었다.


분명 나는 열쇠 전문가이다. 하지만 선택은 손님의 몫이다. 그러기에 나의 열정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나의 정보가 그 사람의 혼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돌아보면,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큰 것을 얻었다. 내가 ‘더 좋은 것’이라 믿는 것을 무조건 권하는 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란 것, 그리고 도움은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을 때에만 진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기준과 눈높이를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위에서 설명하고 안내하는 것이 진짜 전문가의 자세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역할이 ‘선택을 도와주는 사람’이지, ‘선택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경력이 쌓을수록 그 경험이 때로는 아집이 되어 누군가에게 그것을 강요를 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물건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기준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음’이 다른 이의 ‘좋음’과 같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진짜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일은 나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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