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다투게 됩니다. 말 한마디가 마음을 찌르고, 무심한 행동 하나가 며칠씩 마음을 맴돌게 하죠. 처음엔 “별일 아니야” 하고 넘기려 하지만,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쌓인 감정은 어느 날 얼굴을 바꾸어 돌아옵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왜 나만 참아야 하지’ 하는 마음으로요.
다툼은 꼭 같은 힘을 가진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 위치가 다르거나, 권력이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직원, 고객과 직원,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 이런 관계 속의 다툼은 대부분 한쪽이 만들고 다른 한쪽이 감정을 감당해야 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늘 나를 무시하고, 사소한 말로 상처를 주었죠. 나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래도 일이니까, 관계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 사람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졌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몰랐습니다. 화가 났다가, 슬펐다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습니다.
“화해를 해보는 건 어때요?”
순간 답답함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감정은 그대로인데, 왜 내가 먼저 화해를 해야 할까. 내가 받은 상처는 그대로인데, 왜 내가 이해해야 할까.
그때부터 화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화해는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화해라는 말이 먼저 나올 때는 대부분 약한 쪽에게 그 책임이 돌아옵니다. 누군가의 폭언과 무시에 상처받은 사람이, 오히려 먼저 사과하고 감정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곤 합니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참기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시간 속에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용서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참았는지, 왜 아직도 잊히지 않는지를.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먼저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마주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말이 예전처럼 날카롭게 박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대하더라도, 내가 무너지는 일은 줄어들었고, 결국 그는 나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었던 거겠죠.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화해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용서는 쉽게 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떤 상처는 끝내 아물지 않기도 하죠. 하지만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내 감정을 알고 나면, 상처는 조금씩 흐릿해집니다. 억지로 참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마라. 나 자신을 바꾸는 게 먼저다.”
화해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먼저 사과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지만, 내가 나를 먼저 이해하는 순간부터 상처는 조금씩 사라집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믿습니다.
화해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먼저 안아주는 일이다.
용서는 아직 멀었을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