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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올바름은 모두 다르게 빛난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주말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이 둘러앉았다.

우리는 매주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그 안에서 한 가지 주제를 꺼내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그날도 그랬다. 조용한 거실, 따뜻한 조명 아래 딸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올바름이란 무엇일까?”


말은 짧았지만 질문은 깊었다.
순간, 공간이 고요해졌다. 우리 셋 모두, 각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딸아이는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올바름’은 정의로운 국가, 성찰을 통한 행복, 질서 있는 정치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올바름’과 지금 우리가 말하는 ‘올바름’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이 말하는 ‘옳음’이란 결국 사회가 만든 규범 위에 놓여 있기도 하지만,
그 바닥엔 늘 ‘개인의 기준’이 깔려 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올바름이나 지금의 올바름이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시대가 다르면, 본질이 닿는 각도도 달라질 뿐이다.


“아빠가 먼저 말해봐.”
아내가 부드럽게 내게 권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말문을 열었다.


“나는 올바름을 떠올리면, 늘 '후회'가 같이 떠올라.
무언가를 선택하고 난 뒤,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그건 내게는 올바른 일이었던 것 같아.
습관이든 행동이든,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마음에 걸림이 없을 때,
그게 나만의 올바름 아닐까?”


내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아빠 말에 동의해. 하지만 나는 ‘후회’보다는 ‘아름다움’을 떠올려.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은,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어떤 것인 것 같아.
습관도, 생각도, 행동도, 나를 닮아가야 해.
멈추지 않고, 매일 조금씩 더 좋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과정이 곧 올바름이라고 생각해.”


아내의 말은 나의 생각과 닿아 있으면서도, 방향이 달랐다.
나는 부정에서 올바름을 찾았고, 아내는 긍정에서 올바름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후회를 피하고자 했고, 그녀는 아름다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우리 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딸이 말했다.


“나는 후회보다는... 찝찝함이라고 할까?

후회는 왠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나를 자책하게 돼.
하지만 찝찝함은 조금은 가볍고, 나를 바꾸게 해.
딱딱한 돌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느낌?
그래서 나는 올바름을 ‘모난 돌’이라고 생각해.
시간이 지나면서 다듬어지고, 더 예쁜 모양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순간, 나는 딸아이가 말한 그 ‘모난 돌’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머물렀다.
아내의 ‘아름다움’과 내 ‘후회’, 딸의 ‘찝찝함’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건 결국 하나였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길'.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이는 후회를 통해,
어떤 이는 아름다움을 향해,
어떤 이는 작고 불편한 찝찝함을 따라.


그날의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 옳음이 반드시 정답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어쩌면 올바름이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모나도 괜찮다.
아직 덜 아름다워도, 때로 후회가 따라와도 괜찮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더 다정하게, 더 사람답게 만들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은 그렇게, 각자의 ‘올바름’을 나누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 안의 올바름은 모두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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