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날, 우리는 밥이 되었다

by 시원시원

몇 번 인사를 주고받던 사장님과

처음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주 얼굴은 봤지만 밥상에 함께 앉기는 처음이었다.


낯설지는 않지만 친밀하지도 않은 그 사이,
우리는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어디에도 모서리가 없는 테이블은
묘하게도 마음 둘 구석조차 없게 만들었다.
정면을 응시하기엔 어색하고,
옆을 바라보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
그 탓이었을까.
말 대신, 침묵이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


그 침묵 사이로
이웃 테이블의 웃음소리,
부장님 험담, 아이 학원 이야기 같은
누군가의 생활들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우리의 말 없는 식탁을 대신해
남의 삶이 흘러들어왔다.


그때,
종업원이 반찬을 놓고 갔다.
김치, 멸치볶음, 무나물, 가지무침.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말을 잃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네요.”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교류는 마치 밥처럼 담백하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다.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해
언제나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불필요한 말 한마디가
관계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의 입을 먼저 열게 두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극강의 내향형이었다.


우리는 말 대신 꽁치김치찌개를 맞이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냄비는
우리 사이의 정적을 천천히 데웠다.
시큼하고 얼큰한 향이 코를 찔렀고,
그 매운 기운에 나는 재채기를 참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도 숨을 헐떡이며 물을 들이켰다.
우리는 그렇게 동시에 매워했고,
동시에 웃음기 없는 감탄사만 흘려냈다.
“후—”
“하—”


말이 아니라,
매운맛이 우리 사이를 잇고 있었다.
그러니 밥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국물, 매운 꽁치, 익숙한 반찬들.
그렇게 10분 남짓의 짧은 식사가 끝났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관계의 국물을 나눴다.
말은 적었지만
마음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이라 어색했던 침묵,
그러나 그 침묵을 함께 견뎠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안부 대신
“밥 드셨어요?”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때론 말보다 밥이 먼저다.
말은 오해를 낳지만,
밥은 입안에서 해소된다.
말은 때때로 다툼이 되지만,
밥은 언제나 위로가 된다.


식사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낯선 관계의 첫 수저를 들고,
조심스럽게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도
관계의 불을 지폈고,
밥이 되어,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날,

우리는 밥이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안의 올바름은 모두 다르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