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너도
우리는 사람을 통해 따뜻함을 얻기도 하고,
사람으로 인해 서늘함을 느끼기도 한다.
관계란 결국, 온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우면 뜨겁고,
너무 멀어지면 차갑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
그토록 어렵고, 그래서 애틋하다.
내게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이 있다.
A와 B.
둘 다 10년이 넘는 인연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고 해서 같은 관계를 맺는 건 아니었다.
A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내면
그 솔직함이 곧 날카로움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설득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던졌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오래도록 맞춰주며 지냈다.
누군가를 험담하면 나도 함께 욕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공감하는 척을 했다.
그땐 그것이 ‘친함’의 방식이라 믿었다.
친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 편이어야 한다는,
어설픈 믿음 속에서 말이다.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A에게 다른 의견을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평소처럼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말을 툭 내뱉었다.
예전 같았으면 웃어넘겼지만,
그날은 나도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불쾌함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고,
그는 내 반응에 당황했다.
그 순간, 그는 아마 이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늘 내 편이었던 네가, 왜 갑자기?’
그는 몇 마디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그중에는 거친 말도 섞여 있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말없이 매장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너무했나? 전화를 해볼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늘 그에게 맞춰왔고, 그걸 나는 우정이라 착각한 것은 아닐까.'
B는 나와 동갑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A와의 관계가 오래될수록
B의 고요함이 내게는 쉼표처럼 느껴졌다.
그는 잘 듣는 사람이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었다.
대화는 늘 내가 먼저 시작했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다.
“넌 걱정 없어? 힘든 일은?”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괜스레 미안해졌다.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던 건,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성격도 말투도 전혀 다른 두 사람.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 두 사람을 소개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A는 곧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도 같고 배경도 비슷하니
생각도 같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A는 뉴스에 등장한 인물을 강하게 비판했고,
B에게 “너도 그렇지?”라고 물었다.
그날따라 B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리 격한 말도 아니었지만,
A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 실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B의 얼굴에도 불쾌함이 스쳤다.
나는 급히 말을 돌렸고, 그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A는 나쁜 사람일까?
B는 어리석은 사람일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날에는 나도 A 같고,
어떤 순간에는 B 같을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관계 안에서
자기 것을 지키기도 하고,
때론 너무 많이 내어주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우리가 만들어낸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다.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내 마음을 놓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균형을 찾는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 ‘나’부터 잃게 된다.
마음의 관대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조심스레 내어줘야 한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지 말자.
모든 말에 웃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감정을 참아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내가 먼저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그래서 나의 마음도,
당신의 마음도,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