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너도
두려움은
때론 칼처럼 날카롭고
때론 구름처럼 흐릿하다.
그런데 가끔은
토끼 탈을 쓴 다람쥐처럼
의외로 귀엽고 별것 아닐 때도 있다.
문제는,
그걸 알아채기 전에
우리는 벌써 도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예전엔 두려움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생각했다.
싸워서 이기든가,
피해서 살아남든가.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두려움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법을 익혀야 할 무언가였다.
그날의 꿈도 그랬다.
황혼이 내리고, 어둠이 번지던 저녁.
멀리서 어렴풋이 다가오는 형체 하나.
개일까? 늑대일까?
가슴이 쿵쾅대고,
숨이 가빠졌다.
마음은 소리친다.
"늑대야! 도망가!"
나는 달렸다.
그러다 문득, 달빛이 형체를 비춘다.
개였다.
그제야 숨이 가라앉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휴 다행이다."
늑대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무사해서였을까?
내손에는
켜지 못한 작은 손전등이 들려져 있었다.
두려움은,
대부분 우리의 무의식에서 자란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고,
문제는 생기지 않았는데 이미 망한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고?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구체적인 상황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따라 자란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다.
금융 위기가 닥치던 어느 날,
우연히 뉴스를 보았다.
‘식량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였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그런 뉴스만 보였다.
기사, 댓글, 영상까지.
그때 내 안의 두려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쌀을 사러 가야 해!"
나는 쌀을 샀다.
햄, 통조림, 콜라, 라면, 사이다…
마치 세계 종말이라도 오는 것처럼.
방 안은 어느새 ‘소형 벙커’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처음엔 웃었다.
“야, 진짜 너무 간 거 아니야?”
하지만 며칠 후, 그는 나와 함께 장을 보고 있었다.
두려움은 그렇게 전염되었다.
마치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챌린지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구는 멀쩡했다.
하지만 내 방은 멀쩡하지 않았다.
쌓인 식량을 보며,
"이걸... 다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알면 비웃겠지?"
이번엔 부끄러움과 민망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 후 나는 아는 이들에게 쌀을 나눠주었고,
친구는 쌀벌레와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의 잔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의 ‘후유증’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중요한 걸 하나 배웠다.
두려움은 행동하지 않을 때 더 커진다.
물론 막무가내로 움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이것이다.
두려움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에 맞는 작은 실행을 해보는 것이다.
'빛이 필요한 곳에, 삽보다는 작은 손전등 하나가 더 유용하다.'
아내와도 두려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아내는 결혼 후,
자신이 하고 싶던 일들을 미루게 되며
어느새 ‘자기 자신’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땐, 그냥 마음속에서 말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근데 안 괜찮아지더라고.”
임신, 출산, 육아…
그 모든 것이 마치 ‘두려움 시리즈’처럼 밀려왔고
그때마다 “조금만 더 참자”는 위로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날부터 결심했다.
참지 않고, 해보기로.
말하고, 울고, 표현하고,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려움은 사라지진 않았지만
작아졌다.
그리고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마치 택시 뒷자리의 동반자처럼..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말했다.
“삶이 우리를 밀어붙일 때,
두려움은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가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두려움은 적이 아니다.
그건 사용법을 알아야 하는 도구다.
잘만 쓰면
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나의 실행력을 끌어올린다.
때론 두려움이 나를 ‘꿈꾸게’ 하고,
때론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제 나는 두려움이 찾아오면 묻는다.
“그래, 왜 왔어?”
“뭘 말해주려는 거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행을 해본다.
메모를 쓰거나,
전화를 걸거나,
무심코 넘겼던 마음의 소리를 듣거나.
그렇게 두려움을 사용한다.
어떤 날은 실패하고,
어떤 날은 웃겠지만,
적어도 두려움에 끌려 다니진 않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흔들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살짝’ 알려주기 위해 오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면,
마음에만 기대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니, 두려움을 싸우거나 피하지 말고
사용해 보자.
그 안에는 놀랍게도
기대와 설렘이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움이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나를 시작하게 했다는 의미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