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버튼이 고장 났습니다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언젠가부터 나는 '긍정'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도 괜찮잖아'


그 말들은 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긍정 버튼처럼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버튼만 누르면

불편한 감정은 잠깐 멈추었고,

복잡한 상황은 일단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긍정 버튼이 고장 났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손님과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손님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저는 제 입장을 말했습니다.

말과 말이 부딪히는 순간, 분위기는 순식간에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속은 상했지만, 저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물러서는 것이 괜찮은 선택이라 믿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발생될 때마다

저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했습니다.

'좋게 생각하자'

'내가 한 발 물러서면 되지'

'이 정도는 그냥 넘기자'


겉으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넘기지만,

속에서는 자꾸만 작은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대처한다고 믿었지만,

단지 감정을 눌러놓는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회피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데 익숙합니다.

'나만 참으면 되니까'

'그냥 넘겨, 이겨서 뭐 하게?'

'좋게 생각하자'


저 역시 이런 말들이

처음에는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계속 반복되어

어느 순간 내 감정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상처를 받았는데도

괜찮은 척,

슬픔이 밀려와도

아무렇지 않은 척,

화가 날 때조차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조용히 마음을 눌렀습니다.


결국 그 '좋게 생각하자'라는 긍정은

감정을 묵살하는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문득,

내 안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생각이 고요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숨죽여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사소한 일 하나에

무너졌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고,

내가 눌러뒀던 감정들이

무너지듯 흘러나왔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긍정을 위해 애쓴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억눌러왔던 거구나.'


인도 철학자 디팩 초프라는 말했습니다.

"두 마음 모두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하는 마음입니다"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

긍정도 부정도 모두 마음의 일시적인 색깔일 뿐,

그걸 판단하거나 고치려고 애쓰기보단,

그저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이구나'


이제 저는 조금 다르게 살아볼까 합니다.

기분이 나쁘면,

그 기분을 그대로 인정하려 합니다.

슬프면 그냥 울고,

화가 나면 속으로라도 표현을 하려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감정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잠시 멈추어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라는 물음에

판단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하려 합니다.


가끔은 긍정 버튼이 고장 나도 괜찮습니다.

억지로 낙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냥 좋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짜 내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

'긍정'보다 훨씬 더 단단한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침묵하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슬프든, 기쁘든


내 감정은, 그 자체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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